재미있게 읽는 기독교강요(4), 이중 구조(Duplex structuca, twofold-structure)
재미있게 읽는 기독교강요(4), 이중 구조(Duplex structuca, twofold-structure)
우리는 신학을 단순하게 정립해서 표현하는 방식을 경계한다. 신학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지식체계는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신학은 영적 세계, 하나님, 계시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모형신학(theologia ectypa)-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 특히 한국 사람은 명료하게 아는 것을 시도한다. “한 마디로 말해줘”. “알기쉽게 말해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부단하게 시도한다. 우리도 그러한 것을 시도하는데, 즐거움은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지 처음부터 즐겁거나 쉬울 수 없다. 그래서 꾸준하게 반복하고 반복해서 자기 몸에 체득이 된다면 즐겁고 재미있고 쉽게 될 것이다. 아무리 쉬운 것일지라도 익숙하지 않으면 낯설기 때문에 어렵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는 신학생이 읽어 성경을 해석하도록 기본 지식이다. 그런데 『기독교강요』는 매우 전문 신학지식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기독교강요』를 좀 더 용이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천천히 살피고 있다.
우리는 칼빈은 신학을 전개할 때 이중 구조(Duplex structuca, twofold-structure)로 진행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중구조는 두 상태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칼빈이 사용한 기법이다. 영적인 일을 합리적 문자 체계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역설(paradox)를 사용하거나 반어법, 유비(Analogy) 등 여러 문법을 사용하는데, 칼빈은 이중 구조로 시도하고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첫 문장에 이중 구조가 나타난다. 『기독교강요』 1권 1장 1절의 첫 문장은 Tota fere sapientiae nostrae summa, quae vera demum ac solida sapientia censeri debeat, duabus partibus constat, Dei cognitione et nostri(Inst., I, 1, 1). “우리가 갖는 학문(지혜)의 총체, 참되고 확신을 갖는 학문(지혜)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인식의 두 부분이다”이다. 칼빈은 지혜(sapientia)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두 부분(duabus partibus constat)의 지식을 아는 것”으로 제시했다.
칼빈은 두 지식의 시작의 우선성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애매한 자세는 후대들이 많은 논쟁을 해야 하며 결론을 낼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전적부패(Total Depravity)를 견지하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의 시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그 지식에서 인간을 아는 지식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순환되면서 확장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칼빈이 어떤 지식 체계를 명확하게 세우지 않는 것은 ‘겸손’을 위한 것이다. 칼빈의 신학을 경건(pietas = 경외(fear)와 사랑(lov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겸손(humilitas)’과 거의 유사하다. 신학도가 신학을 훈련하게 되면 겸손과 온유가 자연스럽게 맺혀야 한다. 잠언에서는 지혜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많은 성향을 제시하는데,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 두 부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칼빈은 잠언서의 성경주석을 집필하지 않았다.
※ 원형신학(theologia archetypa)과 모형신학(theologia ectypa)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신학자는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Franciscus Junius, 1545–1602)이다. 그는 『참된 신학에 대하여(De vera theologia)』에서 이 구분을 최초로 사용했다.
형람서원 고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