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학교에서 배울 때는 "4.19 의거"라고 배웠는데, 지금은 "4.19혁명"이라고 한다.
'의거(義擧)'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이 불의에 항거하여 일으킨 저항을 의미한다. '혁명(革命)'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대규모의 시민 봉기한 것이다. 4.19는 단순히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것을 넘어,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국민적인 움직임이었으며, 실제로 제2공화국 수립이라는 정치 체제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의거'에서 '혁명'으로 바뀐 것은 1987년 헌법(9차 헌법 개정)을 개정할 때 공식적으로 전환되었다.
4.19혁명은 주도적인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사건이다. 4.19혁명은 1960년 4대 대통령 선거일인 3.15 선거에 부정선거에 대해서 항거하는 국민의 저항이다. 4.19 혁명으로 1공화국이 종결되고, 2공화국 시대가 되었다. 2공화국은 헌법이 개정하면서, 장면 내각이 시작되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인해 제2공화국은 종결되었다. * 1961년 5.16은 김영삼 대통령 시대 1993년까지 혁명으로 사용되었다. 문민정부에서 '군사정변'으로 규정해서 교과서에서 변경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은 대폭적으로 변경된 것 같다. 김영삼은 장로였는데, 교회에 관한 분야에서는 부정적인 모습을 구성시켰다. 교회에서 운영하던 선교원이 유지되지 못하도록 법제화(공교육 강화라는 방향성)시켰고, 군종장교에서도 개신교 군목을 축소하고 원불교 군목을 도입시켰다. 그리고 대학원대학교 체계를 구축하면서 이설 종교들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지금은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유지되는 6공화국 시대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기관은 1948년 8월 15일에 시작되었다. 7월 17일에 제헌국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25년 4월 19일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함상에서 항복에 서명하면서, 일본의 군부를 퇴각했다. 그리고 승리자인 미군정체계가 들어왔는데, 그것은 독일 포츠담(Potsdam Conference)에서 열림 회담에 근거한 국제법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 서명한 것이 되기도 한다. 포츠담 선언에서 우리 독립이 인준되는 것은 중국 대표인 장제스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외교를 단절했다. 12년이 지난 뒤에야 민간외교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헌신적인 독립운동을 한 열매이다. 1932년 홍커우 공원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 장제스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1945년 혼란했던 상황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독재 통제 사회가 종결되고, 자유 민주 사회가 되면서 나타났다. 그래서 혼란한 상황보다 질서가 있는 독재 사회에 대한 동경을 보일 정도로 혼란하다. 사회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독재와 자유"는 "질서와 혼란"이라는 두 테마를 동시에 갖고 있다. 자유롭고 질서정연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1534년 재세례파의 뮌스터 폭동에서 증명된 사례이고, 1649년 찰스 1세를 처형한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정치 체계에서도 드러났다. 좌경화되었던 유럽이 우경화에 대한 성향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의 우경화가 기독교화와 동의가 아니다.
급진적 주장이 순수한 지식인을 열광시키지만, 그 순수한 지식의 경륜이 인간 공동체에 들어올 때는 더 심각한 결과를 산출시킨 것이 세계 역사에서 나타났다. 순수한 지식인의 무능과 그에게 감춰진 탐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자기 한계에 대한 처절한 인식과 동료와 이웃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사회에 대한 글쓰기는 좀 더 냉철하게 글을 써야 한다. 우리 사회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부모와 국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국가는 임의로 변경할 수 있지만, 시작을 바꿀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는 운명이 아니라 소명이다. 이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시대인인 나는 누구인가? 시대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인격체로서 자기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 시대 속에서 자기 인격을 구체화시켜서 보이는 것이다. 상대의 옳음과 그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옳은 일, 정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나를 구현해 보라. 나는 나이고, 사회는 사회이다. 나의 이루어짐이 사회의 이루어짐이다. 그러나 사회의 이루어짐이 나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사회 이루어짐에 해롭지 않다고 신뢰하며 가는 것일 뿐이다. 성경은 시대를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씀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형람서원 고경태
카톡방에서 올라온 4.19 혁명기념 글자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