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인가. 부활의 달"
제가 60여년 전 육사 생도 시절에 상급생들이 하급생들을 불러 모아 특성 훈련을 자주 시켰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때는 그것이 관행으로 인정된 때였습니다. 이 특성 훈련을 한 상급생 중 어떤 생도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야 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일으켰던 것이 아련히 기억됩니다.
T. S. 엘리엇(1888-1965)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게 하고,
추억과 욕망을 뒤 섞으며,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 망각의 눈으로 온 땅을 뒤덮고,
메마른 줄기로 자그마한 생명을 먹여 살렸다.
여름은 우리를 급습해 왔다."
많은 시민들이 생명이 소생하는 꽃 피는 4월을 노래한 반면,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었다고 반추하며 몽롱한 은둔의 세계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흔들어 깨우는 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라는 황무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죽음에 매력을 느끼고 죽음과 같은 삶으로부터 자신을 각성시키기 싫어하며,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의 봄을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부활의 능력을 상실한 현대의 종교적 빈곤에 대한 엘리엇의 문명사적 비평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4월의 부활절을 앞두고도 영적 세계에 대한 각성을 잃고, 오직 세속적 및 정치적 문제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사회 문화적인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서 정치 문제에 깊은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현상으로서 기독교의 본질적 성격인 초월성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4월이 한국 교회를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불어 넣는 재생의 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탈 세계적이고 초월적인 특성을 회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가 처리 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으로 깊이 뿌리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의 하나님 되심과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죽음의 피의 복음을 마음 중심에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자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는 명령 속에 사는 자입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