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역사에 관한 두 저서, 손병호와 배광식
장로교 역사에 대한 손병호 박사와 배광식 박사 두 분의 저서가 있습니다. 손병호의 <장로교회의 역사>는 1993년에 출간되어, 2000년(7판)을 발행했습니다. 손병호는 장신대(통합) 측 연구자로 <교회헌법학원론>(2001년)을 출간했습니다.

장로교회, 장로들 교회 아니다
손목사의 주장은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는 교황의 전제적인 로마 카토릭교회가 아니며 감독들이 좌우하는 “감독교회”가 아니며, 교회인들 중심의 “회중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장로교회가 장로 중심의 “장로들의 교회”을 의미하지도 않는 다는 주장을 폈다.
장로교회는 교황이나 감독이나 목사나 장로나 교인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를 반대하며 “개혁한 교회”(REFORMED CHURCH)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로 개혁한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 정치나 치리에 있어서는 “원로회 체재”(PRESBYTERIAL GOVERMENT)로 목사들과 장로들이 함께하는 교회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장로교 헌법에 장로들을 치리 장로(ruling elder)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로 표현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로들이 교회의 장립자나 기여가 크고 가족들도 많게 되니 마치 사주처럼 되어 정치나 치리를 하고자 할뿐 아니라 목사의 목회사역이나 신학, 교의와 성례전에 축도문제까지 관여한다는 비판을 한 것이다. 손 목사는 그것은 교회의 본질을 모르는 소치라는 것이다. 장로들의 이런 파워는 신학교나 노회, 총회을 주도하였고 그 힘에 압도된 일부 목회자들도 장로들과 야합하거나 침묵했다는 것이다.
당시 장신대 이사회는 손병호 목사를 장로 정치교회론과 교회정치와 교회행정을 가르치도록 청빙하지만 그 다음 학장에 와서는 이사장과 교수들이 합세하여 자신을 막았다는 주장도 한다. 그후 부산장신 교장을 지내면서 굽히지 않고 지론을 주장하자 교단의 교권세력들은 급기야 손병호 목사를 축출하게 이른다. 지금 보면 그 내용이 별 것도 아닌 데 손목사의 생각이 너무 앞선 것이었을까? <예장뉴스>, 2020.03.18의 보도 내용 중에서...

『장로교정치형성사, 배광식 저, 우리시대』
이 책은 장로교회 정치 제도의 형성과 발전을 역사적으로 연구 · 검토하고 장로교 정치 원리와 치리 제도를 공식 문서들을 통해 밝혀낸 탁월한 책이다. 더욱이 이 책은 저자가 이미 저술한 책의 최종 증보라 할 수 있다.
저자 배광식 목사는 「장로교정치제도 어떻게 형성되었나?, 도서출판 토라. 2006」에 이어 「장로교정치사상사, 이레서원. 2008」 을 통해 밝힌 장로교의 정치제도에 관한 최종 통합본으로 이번 「장로교정치형성사」를 집필하여 발간하게 된 것이다.
저자 배광식 목사는 "이제 더 이상 장로교정치제도에 관한 책은 저술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그 간의 작품들이 종합된 저술임을 밝혔다.
「장로교정치형성사」는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와 치리 제도를 역사적 발전 과정을 따라 연구한 책이다. 저자는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는 통치권이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과 주권의 대리자들로서 성직자들은 직분이 평등(차별이 아닌 구별)하다는 것과 모든 성도는 만인제사장으로서 교회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적(代議的) 제도를 그 근본으로 한다"라고 저서에 밝히고 있다.
이울러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평등성, 자율성 그리고 연합성의 원리를 토대로 하여 장로교 정치 제도와 치리회를 구성하였다"라고 했다. 저자는 "칼빈은 이러한 원리들을 『기독교 강요』뿐만 아니라 『’제네바교회 규정서』’를 통해 밝혔다. 이것들은 후일 칼빈의 영향을 받은 존 녹스(John Knox)에 의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라고 했다.
「장로교정치형성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도도히 흐르는 장로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장로교라는 제도는 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가장 성경적인 교회 정치 체계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칼빈과 존 녹스의 이야기보다 성경에서 출발한 장로교 정치를 논하는 책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본질적인 장로교의 정치가 현재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장로교회에 얼마나 녹아있는지 돌아볼 수 있게하는 개혁의 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세속의 물결과 시대의 흐름으로 방향을 찾고 있는 많은 목회자와 장로교인들에게 등대와 같은 밝은 빛을 조망해주는 귀한 책이라 할 것이다. 또한, 장로교 정치의 체제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최소한 장로교의 정체성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 갈 수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혼탁해져버린 장로교 정치의 원뿌리를 찾아 볼 수 있는 귀한 저서라고 할 것이다.
출처 : 기독교종합신문(http://www.potalnews.com)


두 저서의 공통된 약점은 장로교의 근원을 종교개혁 혹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로 보는 것입니다. 사무엘 뮐러는 장로교의 기원을 "왈도파"로 제시했습니다. 칼빈의 교회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한 사역자는 스트라스부르크의 마틴 부써입니다. * ‘왈도파’ 혹은 '발도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피에르 왈도가 등장하면서 편의상 왈도파로 불렸다. 피에르 왈도는 프랑스 리옹 출신으로 피에르 부드(Pierre Vaudès, Peter Waldo, 1140~ 1218) 또는 피에르 발도, 즉 왈도라 불린다. 그를 추종하는 이들을 왈도파(Waldensians)라고 부른다. 발도파에서 잉글랜드의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얀 후스(Jan Hus, 1372 - 1415) 등이 나왔다. 후스가 예언한 백조가, 마틴 루터, 1517년 10월 31일의 선언으로 보기도 한다. 100년 뒤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신교와 구교의 분기점이 되었다.
손병호는 성경에서 장로제의 기원을 제시하고 있지만, 중세에서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에 결국 종교개혁을 근원을 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파와 왈도파로 장로교(개혁파)의 기원을 제언한 연구자는 권현익입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교회 역사>(세움북스, 2019년)에서 바울파(Paulicians, Paulicans)까지 기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장로파의 기원은 왈도파를 공동 기원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개혁된 사상의 모든 모습이 왈도파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기점은 787년 니케아 공의회(7차)에서 결정한 성상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상숭배를 결정했지만, 성상숭배를 거부하는 자(iconoclasm, 성상파괴주의, Iconoclasts)들이 종교개혁까지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공통 자산 중 하나는 성상거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상을 거부하기 때문에 동질의 종교개혁으로 보지 않습니다.
장로교회는 성상을 거부하는 성향과 복음선포를 지향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 두 성향이 마틴 루터와 존 칼빈에게서 나타납니다. 사회의 영주들과 함께했던 루터에게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나고, 사회의 변방에 있던 칼빈(제네바에 살던 프랑스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명료하게 나타납니다. 개혁파와 루터파의 적지 않은 차이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연구자들, 특히 현장 사역자인 목사가 발간한 좋은 장로교회사입니다. 저는 장로교 정치원리는 "대의적 제도"가 아니라, "강단에서 선포된 복음을 명료하게 이해해서 적용하는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선포가 선명하게 나타나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질서가 회복될 것입니다. 복음선포가 없이 잠시 회복된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곧 자연상태로 복귀될 것입니다. 강단의 설교에서 복음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그 복음을 듣고 이해하고 삶에 적용되어야 교회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장로교회입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