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전 기독교 역사

321년 3월 7일 반포한 일요일 휴업령

형람서원 2024. 7. 2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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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나 안식교는 기독교 정보에 대해서 개념화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하고 있네요... 우리 <형람서원>이 제공하는 기독교 정보는 정통신앙에 관점에서 구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단의 공격은 우리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도 공략의 주요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중요한 약점은 명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 약점에 무수하게 넘어졌으면서도 명확한 신학 지식을 세우는데 힘쓰지 않는데, 형람서원은 두 번의 실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서 두 번 소를 잃지 않도록 힘씁니다.

서덕종 집사의 안식일 분석 37

서덕종 집사/ 이단연구가(안식일 분석 전문). 이태원대성교회

 
엘렌 G 화잇의 주장

일요일의 준수는 콘스탄틴 황제가 자신의 정치적 및 사회적 잇점을 생각하여 321년에 포고한 일련의 그 유명한 칙령을 통하여 로마 제국에서 합법화한 것이다. … 태양은 이교 신들 중 최상의 신이었다 … 교회는 일요일을 신성한 날로 만들었다. (역사와 예언 p.534,535)

[반론] 안식일 교회의 창시자격인 엘렌 G 화잇은 주후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하면서 주일예배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요일은 영어로 Sunday인데 태양의 날로 번역된다. 이를 근거로 기독교인의 주일은 태양을 숭배하는 것이며 “짐승의 표”를 받은 자라고 저주하여 기독교인들을 미혹하는 도구로 사용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주일예배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곧 “안식 후 첫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콘스탄틴이 태어나기 약 300년 전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의 공휴일 선포로 주일예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신앙을 파괴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콘스탄틴은 기독교에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첫 번째, 기독교의 예배일을 공휴일로 선포한 것이요.

두 번째,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로 인정해 준 것이다.

콘스탄틴의 공휴일 선포는 종교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목적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콘스탄틴의 공휴일 선포의 효력은 온 열방이 아니라 로마가 지배하는 곳으로 제한된다. 또 로마의 휴일이 토요일이었던 것을 일요일로 바뀐 것이 아니라 그동안 없었던 공휴일제도를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는 주장은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모세 시대부터 토요일을 휴일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드리는 “안식 후 첫날” 은 공휴일이 아니라서 낮에 모이지 못하고 저녁이나 이른 새벽에 모였다고 한다. 콘스탄틴이 태어나기 약 300년 전부터 말이다. 더구나 기독교의 주일예배는 로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콘스탄틴의 주일 휴업령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기독교에 큰 선물이 된 것은 틀림없다고 한다.

콘스탄틴의 또 다른 선물은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로 인정해 준 것이다.

당시 로마에는 다신론 주의자들이 주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다신론 주의란, 한 사람이 여러 신을 믿고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유일신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만 믿고 섬기기 때문에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탄압이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탄압을 피해 지하의 무덤 주변이나 좁은 골방에 숨어서 예배드렸는데 이것을 지하교회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지하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었는데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게 되면서 탄압이 사라지고 감옥에도 가지 않고 마음껏 모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다른 샤머니즘까지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았는데 그중에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곳은 숫자가 많았던 기독교라고 한다.

마틴루터와 주일예배

김디모데의 주장

마틴루터가 종교 개혁을 통해 천주교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주일만은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계명과 유전 P.66)

[반론] 위의 주장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마틴 루터가 주일을 지켰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교황 레오10세에게 목숨을 걸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던 사람이다. 그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런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종교개혁 이전부터 이미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확증이요.

2 기독교의 주일예배는 성경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직 성경만을 주장하는 루터의 성품으로 봐서 기독교가 비성경적이었다면 개종하지 않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서라도 주일에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안식일을 버리고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요한계시록 이후에 주일 지킨 학자들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안식일과 주일을 지키다가 차츰 안식일을 버리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방인 지역에 세운 교회는 처음부터 주일을 지켰다고 한다. 진용식 목사님도 안식교에서 탈퇴한 후 2년 동안 주일과 안식일을 겸하여 지켰다고 한다. 이제 요한계시록 이후에 주일 지킨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간단히 몇 사람을 소개하려고 한다. 아래의 내용은 (성서대백과, 기독지혜사)와 다른 자료를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안디옥 교회의 주교로 순교한 사람인데 2세기 초반에 마그네시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일지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했다 (Magnesians 9:1~3).

디다케는 사도 교부 문서 중에 하나로 2세기 초반에 쓰여졌는데 그 문서의 내용 중에 “매 주일 주의 날에 모든 교인들이 함께 모여 떡을 뗄 것이며 각자의 죄를 고백한 후 주께 감사를 드려라. 이것이 바로 너희가 드릴 신령하고 온전한 예배이니라” (Didache 14:1).

폴리나는 본도와 비두니아 지방의 총독을 지냈는데 A.D.112년경에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그리스도인들이 습관적으로 모이는 일정한 날 새벽에 모여 그리스도를 신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위 내용에 주일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날은 “주의 날”이며 시간은 새벽이었다고 한다.

저스틴(Justin Martyr, A.D. 100~165)은 2세기 중엽 최초의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인데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아담, 아벨, 에녹, 노아 등과 같은 옛날의 의로운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또 주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를 처음 시작하신 날이기 때문이고,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허위와 불법에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41장). 또 “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주일예배 시간에 정기적으로 연보를 한다.”고 했다.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A.D.170년경 고린도 교회의 주교였는데 로마교회에 쓴 편지에 “오늘 우리는 주일의 신성한 날을 지냈고 이날에 우리는 너희에게서 온 서신을 읽었다.”

이레니우스(A.D. 130~200)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의 제자이며, 리용의 감독으로 사역했는데 ”178년에 로마의 빅토르와의 서신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를 기념하는 행사하는 주의 날 이외의 다른 어떤 날에도 행해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클레멘트(150~215)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최초로 교부 문서를 집필한 신학자로서 주일 준수를 지지하여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플라톤의 저서 ‘공화국’에 ‘여덟 번째 날’ 바로 “주의 날”을 주장하며 최초로 주일에 노동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오리겐(Origen)은 3세기 초반의 신학자인데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일원으로 클레멘트의 제자로 계승자였다. 오리겐은 그의 저서에 “하나님을 섬기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의 모든 생애가 모두 주님께 속한 것이므로 당연히 그리스도인은 항상 주의 날을 지켜야 한다.”

터툴리안(150~225)은 3세기 초의 서방교회의 신학자인데 “우리는 안식일이나 다른 유대 절기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른 저서에 “안식일을 계속 지키고 할례를 계속 행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담, 아벨, 노아, 에녹, 멜기세덱 등도 역시 이러한 것들을 지키고 행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다스칼리아 아포스톨로룸(Didascalia Apostolorum)은 수리아의 문서인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책인데 3세기 하반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문서에 “사도들은 주의 날을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성찬 의식을 행하는 날로 지정하였다. 왜냐하면 주의 날에 우리들의 주님인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주의 첫째 날에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또한 주의 첫 날에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씨푸리안(Cyprian)은 칼타고의 주교였는데 A.D. 253년에 개최된 제3차 칼타고 회의를 근거하여 종교집회 서신을 썼는데 거기에 “여덟째 날 주님께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우리에게 영적인 할례를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여덟째 날, 즉 주의 날은 예배 이상의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베드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지낸 그는 제1세기 초반기에 말하기를 “우리는 주의 날을 기쁨의 날로 지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날에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유세비우스(Eusebius, 260-340)는 가이사랴의 주교를 지냈는데 그의 저서 ‘교회사’ 중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결정한 것은 사도들의 관습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는 유세비우스와 같은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지냈는데 그의 저서에 옛 창조물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은 죽음을 의미하고 새 창조물의 첫날인 주의 날은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아다나시우스의 저서 ‘안식일과 할례’에 기록된 내용을 [헤세이]가 그의 저서 ’일요일‘의 p.68,69 중에서 인용한 것임).

어거스틴(Augustine)은 힙포의 주교를 지냈는데 4세기 말경에 기록한 그의 저서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날’로 알고 주일을 강조했다.

요한 크리소스톰(354~407)은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를 지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 지키는 안식일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제롬(364~420)은 5세기 초반경에 애굽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날에 그들의 모든 시간을 기도와 성경 읽기로 보낸다.”

◎ 5세기경에 쓰여진 교회의 규율 입문서인 〈사도교헌〉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즉 주의 날에는 다른 날보다 더 부지런할 것이며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고통을 당하기까지 그를 낮추시고 다시 죽음에서 그를 부활시키신 주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라”

루터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의식이나 율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또 그의 저서 〈탁상담화〉에 주일은 유대인의 의식체계에 근거하여 지켜지는 것을 반대하면서 주일성수를 인정했다.

쯔빙글리(Zwingli)는 스위스의 종교개혁가인데 루터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주일성수를 인정하였다.

칼빈(Calvin)은 히브리 안식일은 일종의 표상, 즉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몸으로 오셨던 모든 진리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성취되었다(골 2:17 KJV). 따라서 안식일은 폐지되었다고 명백히 주장하였다.

존 녹스(John Knox, 1514~1572)는 스코틀랜드의 목사인데 그는 본질적으로 주일 준수와 관련된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견해를 옹호하였다.

마이클 스미드는 수리아의 문서인 디다스칼리아 아포스톨로룸 (Didascalia Apostolorum). 즉,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책에 “사도들은 주의 날에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성찬의식을 행하는 날로 지정하였다.” 또 “주의 날에 우리들의 주님인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주의 첫째 날에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또한 주의 첫날에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되었다고 한다.

※ 아래는 진용식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그대로 옮김.

◎ “그런즉 옛 관습을 따르던 사람들은 희망의 새로움을 얻게 되었으며 차후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그들의 생명이 주를 통하여 살아난 주의 날에 맞추어 그들의 생활을 개조하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서 9절 AD 107년).

◎ “그런 이유로 우리 또한 여드레 째 날을 즐기는 날로 지키니 그날에 또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심이 명백히 보였음이라.” (바나바서 15절 AD 70~130년).

◎ “주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도시나 시골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곳에 함께 모여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사도들의 기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낭독자가 낭독을 마치면, 사회자가 가르치며 이러한 말씀을 본받아 살기를 권한다. 그리고 사회자가 같은 방법으로 자기 능력에 따라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회중들은 아멘으로 회답한다.” (순교자 저스틴 마터의 제1변증서 62장 AD 115년).

◎ “그러나 주일(일요일)은 우리 모두가 일반 모임을 갖는 날이니 그것은 하나님이 어두움과 물질 속에 변화를 일으키사 세상을 창조하신 그날에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저스틴 마터의 제1변증서 67장, AD 155년).

◎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은 기독교회의 초기부터 성수 됐다. 그것은 안식일(주간의 일곱째 날)을 지키는 유대교로부터의 이탈이었다. 한 주간의 첫날로 옮긴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마다 상기하기 위해서 였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의 시대까지는 주일(일요일)이 공휴일로 지키지 못했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예배 모임을 가졌다.” (마이클 스미드, 생명의 말씀사, 교회사 핸드북, p.9).

◎ “여태 지켜온 가장 오랜 절기는 부활절과 일요일 예배였다. 부활절 축하는 오순절까지 연속됐고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기간에 무릅을 꿇지 않고 예배하는 습관을 언급했다.” (대한기독교서회 교회사 초대편 p.139).

※ ‘만약 초대교회가 안식일에 예배드린 자료들이 있다면 이들이 만든 〈확실한 증거〉라는 책에 대대적으로 인용하여 활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에는 초대교회의 안식일 예배의 근거는 하나도 인용하지 못했다.’(진용식 목사).

안녕하세요 서덕종입니다.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셔서 감사하고, 37회 동안 연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교회와신앙> 모든 관계자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서덕종 집사는 이단연구가이자 안식일 분석 전문가다. 그는 최근 <안식일을 버려라>(서덕종, 한사랑가족상담연구소, 2023)를 출간했다. 안식일주의자들과 직간접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발견된 그들의 비성경적인 내용은 물론,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 원고 시리즈는 서 집사의 책 내용을 요약 간추린 것이다(상담 전화 010-7706-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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