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의 성자, 이세종(1877~1942)
화순의 성자, 이공 이세종(1877~1942)과 이현필(1913~1964)은 서구의 영향을 받은 교회와 별개로, 한국의 독자적이라 할 수 있는 토착적 영성을 자신의 삶
등광리에서 노라복 선교사에게 (장로교) 세례를 받았다.
기독교의 경우 종신 수도자들은 수도 공동체에 입회할 때 이른바 ‘복음 삼덕’이라 부르는 청빈, 순종, 순결의 세 가지를 서약한다. 예수를 믿고 변화된 이후, 자신을 가리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의 ‘이공’(李空)이라고 했던 이세종은 성경을 제자들에게 전하면서 청빈·순명·순결 세 가지의 실천을 강조했다.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였던 정경옥은 1937년 이세종을 만나보고 그를 가리켜 ‘조선의 소박하고 순후한 성자’라고 칭하였다.
나주(당시 화순군) 다도면 에 있는 방산교회에 나갔다. 그 곳에서 제자 이현필을 만났다. 이세종의 신비한 삶은 이현필과 최흥종(1880-1966), 강순명, 백영흠 등의 제자들로 인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세종의 수제자 이현필은 광주와 무등산 일대에서 6·25 뒤 고아들과 폐병 환자들을 돌봤다. 그는 병자와 고아들을 돌보면서 자신은 푸성귀 외엔 거의 곡기를 입에 대지 않고, 맨발로 눈밭을 걷는 고행을 하여 ‘맨발의 성자’ 또는 ‘한국의 성프란치스코’로 불린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등광음촌길 13-7 등광교회
24 καὶ ἐξέβαλε τὸν ᾿Αδὰμ καὶ κατῴκισεν αὐτὸν ἀπέναντι τοῦ παραδείσου τῆς τρυφῆς καὶ ἔταξε τὰ Χερουβὶμ καὶ τὴν φλογίνην ρομφαίαν τὴν στρεφομένην φυλάσσειν τὴν ὁδὸν τοῦ ξύλου τῆς ζωῆς.
After he drove the man out, he placed on the east side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a flaming sword flashing back and forth to guard the way to the tree of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