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서원] 고린도후서 6장: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요구하는 내용: 세상이 아닌 거룩으로
[형람서원] 고린도후서 6장: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요구하는 내용: 세상이 아닌 거룩으로
[1-2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God’s co-workers, as workers together with him)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God’s grace)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Fellow Ministers of God, God's fellow workers, 고전 3:9)"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제시한다.
사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간절한 마음과 진지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사도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성도들에게 은혜에 착념하도록 권면했다(1절). 아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아직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다!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며 그에게로 가까이 나아와 구원을 얻어야 한다(사 55:6). 그러나 말씀의 기근이 올 때가 있다(암 8:11).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은혜를 거두시고 심판을 내리시는 날이 올 것이다(잠 1:24-26).
[3절]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의 직분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낌을 주지 않도록 처신하려고 애썼다. 그의 직분이 비난받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며 영혼 구원과 교회 건립의 일들에도 지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회 직분자들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행동한다면 교회는 은혜롭게 진행되며 잘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도, 교회도 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평안과 건립에 해를 끼칠 것이다.
[4-5절]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일꾼임을 보여주었으니 곧](바른 성경)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바울은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일군임을 보여주었고 고난을 많이 견디었다. 경제적 어려움도, 핍박과 매맞음과 갇힘 등의 육체적 고난도 있었다. 그는 때때로 어떤 이들의 반대와 배척을 받았고 소동과 소란을 경험했다.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일들도 있었다.
[6-7절] 깨끗함(purity)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크레스토테스, 친절함: understanding/ knowledge, patience and kindness]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sincere love)과 진리의 말씀(truthful speech: λόγῳ ἀληθείας)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그러나 바울은 범사에 깨끗했다. 물질 관계에서도 이성 관계에서도 그러했다. 이것은 후대의 모든 일꾼들에게 모본이 된다. 또 그는 항상 지식으로 준비되었다. 전도자는 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 그는 범사에 오래 참았고 친절했다. 또 그는 늘 성령의 감화를 받았다. 성령께서는 전도자들의 힘과 위로이시다. 또 그는 거짓 없는 사랑으로 행했다. 이것들은 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는 또 진리의 말씀으로 일했고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일했다. 또 그는 의를 전하고 의를 세우는 도구로 일했다. 복음 운동은 의인 만드는 운동이다. 물론 이 일을 위한 도구로 쓰임 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고 그 의만 의지하고 그 의를 전하고 의를 실천하는 자이어야 한다.
[8-9절]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비록 사도라는 그의 직분이 영광스럽지만, 바울은 악하고 거짓된 비난도 받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의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또 그의 확신 있는 교훈 때문에 그는 확실한 지식과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마치 속이는 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속이는 자가 아니고 진리를 말한 자이었다. 또 그는 자기를 선전치 않고 조용히 일했으므로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은 그를 인정하고 그를 사랑했고 그의 이름은 그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그는 죽을 고난도 많이 당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으로 구원 얻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그가 고난을 당하고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할 때는 마치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 같았지만,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를 겸비케 하고 하나님만 의지케 하는 훈련 과정이었다.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자로이었음이로다].
비록 그가 성도들의 연약 때문에 근심하기도 했지만, 그는 예수님과 그의 구원 사역의 확장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부요하게 하는 자이었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로 부족함이 없이 일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꾼들은 평안 가운데서 뿐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바른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 전도자의 직분은 고난으로 감당해야 할 직분이다. 그러나 비록 심적, 육체적, 물질적 고난이 컸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과 위로와 능력도 컸다.
[11-13절]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바울의 마음은 넓어져 있고 그의 입도 열려 할 말을 가지고 있었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향해 마음이 좁아져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그의 고난의 사역을 상기시키며 아버지같이 권면한다. 그의 사역은 그들에게 그의 진심을 알게 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넓게 열고 그의 말과 생각과 행위를 이해하고 그와 일치된 마음을 가지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생각이 목사의 생각이 되고, 목사의 생각이 장로들과 교인들의 생각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서로를 향하여 마음이 좁아짐이 없이 마음을 넓혀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 안에서 일치할 때 교회는 잘 진행하고 세워질 것이다.
[14-16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헤테로쥐게오: 어울리지 않게(혹은 부당하게)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Do not be yoked together with unbelievers). 의와 불법(righteousness and wickedness / lawlessness)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너희는, 전통사본, KJV, DRB)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w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믿음 없는 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고린도 교인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멍에를 같이하지 말아야 했다.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거룩한 길을 걷는 자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삶의 주인이고 죄에게 종이 되어 불경건과 불의와 죄악된 욕심 가운데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어울리지 않는 멍에를 같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의와 불법이 함께할 수 없음과 같다. 의는 불법을 정죄하고 멀리하며 불법은 의를 싫어하고 배척한다. 또 그것은 빛과 어두움이 서로 사귈 수 없음과 같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물러가고 어두움이 오면 빛이 물러간다. 또 그것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벨리알(Beliavr)은 ‘무가치한 자’라는 뜻으로 마귀를 가리킨다(BDAG).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이다(마 13:39). 주 예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히 2:14).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서로 조화될 수 없다. 또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은 가진 것들이 서로 다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얻고 영생과 천국을 소망하고 그가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있으나, 믿지 않는 자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멸망과 지옥을 향해 가고 있고 허무한 삶을 살고 있다. 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도 일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성도들의 교제 전반에서 적용될 원리이다. 믿음 없는 자는 구원 얻어야 할 대상이지 교제의 대상이나 협력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교제는 주 예수 안에서, 의와 진리 안에서, 참된 믿음과 순종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이어야 한다(요일 1:3).
*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않아야 한다. 멍에의 동참은 믿음에 관한 일이고, 교회에 관한 일이다. 교회의 일을 세속정부에게 소송하는 것이나, 교회일의 도움요청을 세상에게 기대하거나 지원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일에서는 피하지 않아도 된다. 엄중한 계약서와 계약을 실행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에 대해서 깊이 관찰하면서 업무를 진해해야 한다. 계약을 했기 때문에 완료된 것이 아니다. 계약을 했을 때부터 새롭게 동역자 관계에서 시작된다. 세상일과 거룩한 일의 방법과 절차는 많이 다르다. 일치할 수 없는 것 분야는 완전(상향식)한 민주주의이다. 세상의 생존 구조는 (자본적)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매어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영적유익은 없을 뿐더러 해로울 수 있다. 해로움은 믿음의 진실한 교제를 통해서 회복되며 강화된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의로운 한걸음을 주께로 다가서는 것이다. 그 믿음의 길에서 주님을 뵈오면 그 영광의 얼굴 안으로 즉각 들어갈 것이다.
[17-18절]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저희로부터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says the Lord Almighty)이니라 하셨느니라. * 호 1:10; 사 43:6
고린도 교인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교제를 끊어야 한다. 순종하는 형제들 간의 분리는 죄이지만, 불신자들과의 교제 단절은 전능하신 주님의 명령이다. 신약성경은 이것을 밝히 교훈한다. 로마서 16:17-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성도의 교제는 믿는 자들 간의 교제이어야 한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은 성도 상호간의 사랑을 명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사 시대에 반복적으로 실패했던 원인은 가나안 정복 시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들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삿 1장).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키지 않았고 그 우상숭배자들을 포용함으로 그 우상숭배를 본받게 되었고 부패되었다.
오늘날도 교회가 불신자들을 교인으로 포용하고 성도들이 그들과 교제할 때 교회는 속화되고 부패되기 시작할 것이다. 무분별한 교제가 교회를 부패시키는 것이다. 적은 누룩이 온 교회를 부패시킨다. 그러므로 교회는 불신자들과 분리된 회(會)가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교회에 나아와 말씀을 들을 수 있으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영접하기까지 그는 아직 교회의 참 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를 교회의 직분자나 봉사자로 세우거나 그런 자와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려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교회는 구원 얻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은 명확히 구별된다(요일 3:10). 세상과 교회의 선이 명확할 때 교회는 강력한 단체가 될 것이다. 교회가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은 교회의 특권이요 힘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과 비슷하게 될 때 교회는 맛 잃은 소금이 되어 결국 세상에 짓밟히게 될 것이다.
"전능하신 주님(Lord Almighty)"이라는 선언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연상하게 한다. 만군의 여호와, (LORD Almighty) :'체바오트' -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says THE LORD JEHOVAH, The Almighty.”(아람 성경)에서 번역했다. “And I shall be a Father to you, and you will be sons and daughters to me, says THE LORD JEHOVAH, The Almighty.”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불의와 악을 버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고 모든 성경 교훈을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고난으로 감당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지상 생활은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했던 삶이셨다. 사도 바울의 전도사역은 환난, 궁핍, 매맞음, 수고, 비방을 당했던 사역이었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고난을 감수하고 죽도록 충성하기를 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고난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셋째로,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고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믿는 자와의 교제가 중요하다. 악은 누룩같이 퍼진다. 잘못된 교제는 신자 개인과 교회를 부패시키고 변질시킨다. 우리는 잘못된 교제를 피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형람서원 고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