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그리스도의 사람
In the AI Age, How shold people of Christ live?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던 한동안이 지나고, 요즘에는 '4차 산업혁명' 혹은 'AI 시대' 등의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AI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으로는 신기술의 발달, 융합, 초연결성, 그리고 초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빅데이터, 클라우드, 입체 프린트(3D 프린트), 바이오 기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의 다학제적인 통합개발이 요구되며, AI는 이러한 특징을 활용하여 글쓰기, 자료 찾기, 그림 그리기, 심지어 작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AI는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이를 통해 인간은 뇌를 일시적으로 휴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키며 AI 없이는 생각하거나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시대를 맞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오면 AI의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AI를 사용할때 인간의 뇌는 집중력, 사고력 잠금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김선희, 헬스케어, 2020). 이뿐만 아니라 스마트 기기로 AI를 이용하는 동안 인간의 뇌 전두엽 비활성화가 일어나는 것을 일본 토호쿠대학병원 재활의학과 타케우치 나오유키 교수 그룹의 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하루 7시간 이상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아이의 경우 대뇌피질 두께가 정상 아이보다 더 빨리 얇아지는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동아사이언스, 2018). 이러한 뇌 잠금상태는 후성유전학적 이론에 의하면 뇌의 축소현상 발생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Bygren, Times, 2010). 반대로 책을 보거나 사색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전전두엽 기능이 활성되고 고도의 정보처리 기능이 동시에 활성화됩니다(YTN사이언스, 2022). 그러나 AI 의존적 인간이 된다면 사용되지 않는 뇌 즉, 전두엽은 축소되고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부는 발달하여 마치 영화에서 보는 가상의 외계 생명체의 뇌와 유사한 형태가 될 가능성도 상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생물학적인 원리를 가지기 때문입니다(Healthline, 2018). 이것을 의학에서는 '뇌 위축'(Brain Atrophy)이라 표현합니다.
'Public Library of Science One'의 연구에 따르면, 뇌위축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은 인지 장애, 기억력 손상, 느린 사고, 혼동, 건망증, 뉴런의 소실과 신경교증, 뇌부종을 포함하고, 또한 만성 정신 분열증, 악성암, 전신적 대사 질환, 알츠하이머병, 헌팅턴병, 윌슨병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5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AI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뇌위축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런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기계적 뇌활성화 장치가 개발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AI가 일상화되고 있는 현대에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선택하고 지속해야 할지는 중요한 고민입니다. AI 분야의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것이 AI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개발완성된 AI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며 이것은 순차적으로 상용화 준비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AI의 상용화가 더욱 진행된다면 우리의 사회와 문화는 현재 보다 더 크게 변할 것입니다(Adam Park, 2023). 이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문화와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바르게 생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자신의 믿음을 이해하고, 그것에 따라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공지능은 글쓰기, 정보 검색, 그림 그리기, 심지어 작곡까지 가능한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관, 신념, 그리고 믿음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삶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오직 우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상 기억하고 그것에 따라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고유한 사명인 사람의 몫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원시적인 삶 즉, 선택적 불편함을 각오해야 합니다. 막연히 생각하면 이 과학적 문명세계를 떠나면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약하고 보잘것 없는 한 종으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아미쉬'라 사
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며 ‘아미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삶에서 나타나는데,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는 것
을 제1의 삶의 원인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편리하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덜 기억하게 되고, 자만하게 되며, 현대과학에 물들면 더 나은 미래에 적응해야 하고, 국가에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불편함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들만의 삶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미쉬들은 TV, 세탁기, 자동차, 전기 등이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자녀들은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며, 그들의 마음과 공동체는 건강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미쉬처럼 극단적인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불편을 수용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경건의 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는 자발적불편운동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걷기(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줄이기 삶의 다양한 조건에서 조금 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자연과 하나님을 묵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삶의 현장이 세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시대에는 방송매체나 SNS 등 에서 사람이 사람을 비교하여 대중으로부터 평가하게 만들며, 이로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편견을 가지게 조장하는것이 지금의 시대 상황입니다.
우리에게 더 자극적이며, 더 공격적이고, 더 적극적인 것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것은 마치 전쟁 중 불을 질러 적국의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전략과 같이 그리스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을 이 땅으로 돌리게 하는 하나의 전략에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에게 맡겨진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생각합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교육과 성경적 교육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량적인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바탕으로 삶을 이해하고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의미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특정한 이념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본질, 즉 하나님의 형상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를 “자기 수용성”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는 교육의 참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육자(선생)와 교육을 받는 이들(학생) 양 간에는 권리 싸움이 일상화 되었으며, 이로써 교육의 진정한 목적과 가치는 점점 잊혀지고 있습니다. 교육의 본질이 흐려진 이 현실에서 우리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바른 교육의 실천과 현실화를 위해 성경적 삶을 실천하고 교육의 본질을 재조명하는 일에 소명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유업이 한국형 다문화 사회의 다음세대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중요한 미션(Great Commission)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시대적 요구에 의한 의식, 즉 개몽주의 철학적 사조에 의한 포스트모더니즘과 네오막시즘의 시대적 의식화가 문화와 사회에 만연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복음의 본질보다는 교회의 형태유지, 혹은 목회의 본질은 없고 목회활동이 목회의 본질로 둔갑시키기 위해 성경교육이 어렵고 재미없는 것으로 비판하며 네오막시즘적인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여 보여주기 중심의 성경교육, 놀이중심의 성경교육을 지향하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치 시대적 센세이션이라고 스스로 고무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교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다” 라고 말이죠. 교회는 성경에 의해 세워진 보이는 공동체 혹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없이는 교회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은 성경이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는 말로 의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경이 시대에 뒤떨어진
폐기되어야 할 책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성경이 각 시대적 요구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더 이상 참진리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성립됩니다. 이것이 네오막시즘이 주장하는 과학적 원리에 입각한 의견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스스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적 사회교육, 성경적 교회의 교육, 성경 교육,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육이 지금의 시대에 맞는 의식과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된 구원의 믿음의 말씀을 따라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경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는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교육의 본질을 가르치며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바르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교육을 실현하며, 성경적 교육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AI 활성화로 고급화되고 보편화되어가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현실과 비현실을 냉철히 구분하며 주님께서 이 시대에 어떤 사명으로 우리를 이끄실지 항상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미지@ Hospital & Healthc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