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권 박사 <질투사회>에 대한 독서 후기,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Ilkwaen Chung 12시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이후 일본에서 박사과정 중인 남의영님께서 저의 책 "질투사회"를 읽고 자세하게 요약하고 서평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소개하고 공유합니다.
정일권, 2019, 질투사회: 르네 지라르와 정치경제학, CLC. (4)
저에게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정리했습니다.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이 책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좌파 급진주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서양의 주요 철학자의 논의를 바탕으로 전개돼 있습니다.
저자는 대안으로서 불교 윤리의 문제점과 한계가 지적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좌파 급진주의 정치에 대한 비판은 서는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대안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저자 정일권 박사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 후기 식민주의 등의 이론과 담론, 실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좌파 급진주의 정치에 대한 비판은 아래 블로그와 유튜브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정일권 박사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
* 정일권 박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IlkwaenChung
이 글에 앞서 쓴 글들의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질투사회 (1): 이 책의 요지와 의의
https://www.facebook.com/share/p/5WLgompWG67rbAjN/?mibextid=oFDknk
질투사회 (2): 내가 이 책을 만나기까지의 과정
https://www.facebook.com/share/p/8Lk78azAcuyr4RMo/?mibextid=oFDknk
질투사회 (3): 미군기지 문제와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
https://www.facebook.com/share/p/igs4EBa8vsY9zcxR/?mibextid=oFDk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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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수/진보의 정치적 논쟁들이 많은 부분 서구적 논쟁을 수용해서 국내에서도 진행되는 면이 있기에 좀 앞서가는 느낌이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도 분명 보다 깊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서] 유럽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지만, 보수/진보 모두 항상 서구적 논의와 모델을 염두에 두고 수용하고 모방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학자들은 21세기에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논쟁들도 균형 있게 소개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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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는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이성주의, 허무주의, 니체주의, 냉소주의, 반과학주의, 급진적 사회구성주의 반문화운동과 반철학(counter-philosophy)운동 그리고 네오마르크시즘 등과 거리를 두면서 인류 욕망과 문화의 기원 등에 대한 보다 보편적이고 과학적 이해와 연구를 추구했다. 필자는 이 책에서 르네 지라르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혹은 포스트모던 철학자들과의 드라마틱한 대화를 소개했다.
어느 독자의 말처럼 필자는 그 책에서 니체나 하이데거 계보에서 나온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유행 속에서 배제되고 추방되었던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와 그 가치에 대한 지라르의 변호가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도 옳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5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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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유대-기독교적 전통의 기여와 공헌이 필요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르겐 하버마스는 최근에 유대교의 정의의 윤리와 기독교의 사랑의 윤리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들은 인권, 자유, 평등, 보편주의 등의 직접적인 기원이라고 주장한 바있다. 20세기 독일 헌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현대 민주주의와 법학의 주요 개념들은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지라르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주요 개념들이 그 기원이 그리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유대교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187-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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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지라르는 자신의 지적인 여정을 통해서 결국 유대-기독교적 문서들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현대주의자들의 정통주의가 원했던 것처럼,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에 적대적이었다. 그는 현대에 와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들이 점차적으로 현대철학과 모든 "인간 과학들"에게 낯설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폭력적으로 추방되고 배제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들을 정당하게 복권시켜 평가하고자 한다.” 156쪽
“지라르는 반희생제의적이고 반신화적 정신을 가진 유대-기독교 텍스트가 점차적으로 인류의 오래된 가인의 정치학을 극복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희생양에 대한 근심과 변호를 정치적 우선 가치로 삼는 현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고 분석한다. 또한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등장한 새로운 왜곡 현상인 초기독교적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지라르는 현대인은 희생양에 대한 근심을 반기독교적인 방식으로 극단적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유대-기독교의 회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희화화된 초기독교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르네 지라르, 2004,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문학과 지성사, 223-6쪽].
지라르는 세상이 점점 더 기독교적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실이 이 현상을 더 모순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사람들이 그것이 성서에서 나온 것인지 모를수록 성서의 법칙을 되살려 내기가 더 쉽기 떄문이라고 그는 본다. 지라르는 “현대사회에서 이제는 피해자 보호 원칙이나 희생양 옹호가 성스러운 것과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라고 분석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모두 희생양의 무고함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희생양의 무고함을 믿는 것은 알다시피 기독교 사상의 핵심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니체는 기독교 해체를 꾀했는데, 그는 기독교가 희생양을 옹호한다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라르는 “희생양 옹호가 새로운 박해를 수반할 정도”의 새로운 현상을 희화화된 초기독교 사회에서 본다. 지라르는 오늘날에는 오로지 “박해에 반대한다는 이름으로만 박해를 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자신이 박해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의 상대방이 박해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라르는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복음서의 깊은 뜻과 기독교의 역사를 혼동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거의 성스러운 사고방식의 유산과 우리의 모방적인 관행과 맞서 싸우는 점진적이고 느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비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투석을 싫어하게 된 것이 바로 기독교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르네 지라르, 2006, 문화의 기원, 기파랑, 282-286쪽].” 343-344쪽
“지라르는 서구를 벗어나면 자기 문화 비판은 없거나, 있더라도 맹아의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인들은 자문화와 타문화의 관계에 대해 세계 모든 문화들이 행하고 있는 자문화 찬양과는 전혀 상반된 새로운 사고방식을 생산했다고 지적한다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문학과 지성사, 47-8] .
지라르는 오늘날 현대사회가 과거 어느 때보다 희생양에 대한 많은 근심을 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어떤 시대, 어떤 사회도 희생양에 대해 현대사회만큼 많이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본다. (중략)
[지라르에 의하면] 현대인이 희생양에 대해 이토록 근심을 가지는 것은 기독교 때문이다. 휴머니즘과 인도주의는 우선 기독교 문명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지라르는 지적한다. 반면 가족, 씨족, 민족과 같이 아직도 자율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집단은 온갖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부의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희생양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지라르에 의하면, 사회변혁의 힘 중에서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혁명적인 폭력이 아니라 바로 희생양에 대한 현대의 근심이다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문학과 지성사, 203-212].” 525-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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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몽된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만, 20세기 후반 서구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했던 특정한 사조, 곧 유럽 68문화혁명과 성혁명이라는 반문화 운동에 기초한 포스트모던적 급진 페미니즘과 동성애 퀴어이론 등에 담긴 디오니노스적-향락주의적(hedonistic) 차원에 대해서는 보다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287쪽
“인권 감수성과 젠더 감수성을 말하는 좌파적 감수성의 기원은 반신화적이고 반우상숭배주의적인 근본 정신을 가진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다. 지라르의 주장처럼 일본 사무리아[라이] 정신이나 중국 문화에서는 기독교적 감수성으로부터 진화된 현대의 이러한 민감한 감수성을 발견할 수 없다.” 328-329쪽
“지라르는 “오늘날의 풍조가 가져다준 것은 사실상, 낙태, 안락사, 유니섹스와 같은 이교도의 온갖 풍습으로서의 회귀”라고 말한다. 이 ‘새로운 이교’는 십계명을 비롯한 유대-기독교의 모든 모럴(moral)을 참을 수 없는 폭력으로 추정하고, 이런 계명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 이들은 또 도덕률을 충실히 지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박해의 세력과 같다고 간주한다. 이 ‘새로운 이교’는 무한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 그러므로 이 만족을 가로막는 모든 금기를 없애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고 지라르는 지적한다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문학과 지성사, 226-227].”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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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좌파에서는 세상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조, 착취구조, 권력 구조 그리고 지배구조 등에서 찾고자 했다.
이런 입장에서 인간 자신은 무죄한 피해자로만 이해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금 서구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적이고 푸코적인 구조비판을 점차적으로 극복하면서 학문적 시선과 관심을 인간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리고 있다 지라르의 근본인류학은 이러한 현대 정치경제학의 인류학적 전환을 촉진시키고 있다." 109-110쪽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적 기부에서 파생된 반현대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그 근본지향에 있어서 자본주의, 민주주의. 현대 자연과학 그리고 휴머니즘 전통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기본적으로 네오마르크시즘과 급진좌파 정치경제학과 연동되어서 전개되었다.” 453쪽
"장 자크 루소의 낭만주의, 레비 스트로스의 낭만주의적 구조주의 인류학 그리고 니체와 하이데거의 디오니소스적 낭만주의 철학 등의 계보로부터 탄생한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연관된 급진좌파 정치학과 네오마르크시즘에도 하버마스가 비판한 좌파파시즘(Linksfaschismus)의 위험이 존재한다."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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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기초해서 살펴본다면 정치적인 올바름의 개념사적이고 사상사적 기원은 기독교이지만, (후략).” 364쪽
“성소수자, 동성애자, 기타 소수자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전면에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된 최초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다. 그래서 불교 문명권이나 이슬람 문명권이 아니라, 기독교 문명권에서 동성애 논쟁은 어느새 보수와 진보 논쟁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버렸다.
포스트모던 철학에 기초한 동성애 담론, 퀴어 이론과 차별금지법 논쟁 등에는 초기독교적인 것도 존재하고 반기독교적인 것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현대 세계의 진보주의가 기독교로부터 나왔지만 기독교를 배신하고 있다는 지라르의 분석처럼 인권, 차별 금지,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평등을 주장하는 현대 정치적 진보주의도 기독교적 감수성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네오마르크시즘, 루소주의의 낭만주의와 신원시주의 그리고 니체의 반기독교적 철학 등과 연결되면서 반기독교적 지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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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적 사유는 대체적으로 유대-기독교적 유일신론을 폭력과 억압으로 보고 대신 다신론적 세계관을 더 평화스럽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유대-기독교적 유일신론의 업적, 곧 하나님 앞에서 모든 영혼은 평등하다는 성경적 가르침을 통해서 인류 문명이 부족주의와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주의와 세계시민주의를 가능하게 한 업적을 무시하는 것이다.” 273쪽
“동성애 논쟁도 결국은 고도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서구 기독교 문명권에서만 뜨거운 것이다. 동성애와 퀴어 이론 등과 관련하여 기독교 좌파 진영은 인권, 권리, 톨레랑스라는 기독교 가치만을 내세우고, 건강하고 건전한 가정, 자녀, 섹슈얼리티, 도덕과 윤리, 절제와 금욕 등의 다른 기독교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336쪽
"정치경제학적 차원에서 볼 떄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철학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윤리와 휴머니즘 전통에 대한 철학적 공격은 비판적으로 성찰되어야 한다. 니체적이고 포스트모던적 계열에서 유행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담론 속에서 존재하는 반휴머니즘적인 차원도 비판적으로 읽어내어야 한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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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적이고 정신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염려와 배려에서 나온 일종의 시민교양적 정중함(civility)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적으로 과도하고 급진적으로 과잉되면서 보다 데카당스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면도 있다.” 350-351쪽
“정치적 올바름은 (중략) 이후 정치논리화됨으로써 차별적 표현에 대한 과도한 반응을 의미하기도 했다. 정치적 올바름 문제가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역으로 차별 받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예민함 그리고 감수성은 성숙한 민주사회의 시민교양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강조를 하다 보니까 이제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희생자에 대한 정당하고 적정한 감수성의 과잉 현상으로서의 희생자에 대한 감상주의는 비판적으로 성찰되어야 할 문제다.” 355쪽
“지라르에 의하면 가장 강력한 기독교 반대운동은 희생양 근심을 자신의 것으로 떠안고서 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이를 타종교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운동이다. 그들은 기독교가 충분한 성의를 가지고 희생양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과거의 기독교에서 오로지 박해와 억압과 심문만을 본다.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문학과 지성사, 223-226]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비판적 톨레랑스와 현대사회의 새로운 복잡성 이해를 위한 드라마틱한 해석학이 요청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희생양에 대한 근심과 우선적 선택, 그리고 반차별 정신은 성경의 예언자적인 정신이요, 기독교적 정신이다. 하지만 이 기독교적이고 참으로 기독교적인 정신의 과도한 정치적 고용의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반차별, 평등, 톨레랑스의 가치는 결코 자명한 아니라, 특정한 종교와 문화, 곧 유대-기독교적 가치의 유산이다. (중략) 이 휴머니즘적이고 반차별적이고 평등한 가치들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가치들이다.” 5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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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의 위험이나 극좌주의 비판이 21세기 학계나 언론에서 극우주의 비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것을 보면 현대 정치경제학에 있어서 희생자학(victimology)이 지배적인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희생자에 대한 성경적 근심은 진정한 기독교적 윤리와 정신이지만, 희생자를 정치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낭만화하거나 절대화하는 것은 왜곡된 버전의 기독교 정신이다.
인간은 초모방적이고 초경쟁적인 동물이고, 정치적 좌우의 운동에는 필연적으로 집단심리적, 모방심리적 그리고 경쟁심리적 쏠림 현상, 과잉 현상이나 과도한 급진 현상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극우의 위험뿐 아니라, 극좌의 위험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정치적 운동은 결코 극우쪽으로만 쏠리지 않고, 그 반대로 극좌로도 과잉되게 쏠릴 수도 있다.
희생자에 대한 성경적 근심 자체가 호모 미메티쿠스의 경쟁 상대가 되어서 과잉된 희생자 이데올로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목표는 초모방적이고 초경쟁적인 인간에 의해서 생상[산]되는 과잉된 쏠림 현상을 극복하고 어떻게 정의롭고 적정한 희생자에 대한 보호를 시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과잉 인권, 과잉 정의 그리고 과잉 관용 등을 세밀하게 분별해서 보다 정의로운 적정 인권, 적정 정의 그리고 적정 관용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331-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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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기독교적 반차별적 평등 도덕의 기부가 이룩한 고전적 서구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한계와 불만에 대해서 지적하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입장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철학을 비롯한 비롯한 인문학계에서 그동안 미학적 전환 이후 윤리적 전환(ethical turn)이 이루어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고 포용적인 문화를 일부 가져오기도 했지만, 또한 도덕성의 약화 혹은 철학적 향락주의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도덕 지식이 실종하고, (모방) 욕망의 충족만이 지배적인 가치가 되었다. 욕망이 선을 압도하게 되었다.
윤리적 유일신론과 구약 예언자들의 정의에 대한 외침의 전통에 서 있는 기독교 윤리학이 희생자들(약자, 타자 소수자)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보호하고 변화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초기독교 사회의 새로운 복잡성을 전체적으로 함께 바라보는 기독교의 입장은 극우의 전체주의뿐 아니라, 극좌의 전체주의 저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5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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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라는 세계만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방적이고 경쟁적 욕망, 질투와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 그리고 증오심 등에 대해서 보다 자기 성찰적이고 금욕적인 자세도 중요하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 내적 금욕주의'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급진좌파적인 자본주의 체제 비판이나 급진적인 세계 포기적인 바보 되기나 백치 되기는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인 극단이다. (중략) 리얼리즘 정신 속에서 자본주의를 긍정하면서도 그 그림자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 대안일 것이다." 78-79쪽
"현대 자본주의적 질투사회에서 계몽적 성숙성이 중요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계몽적-성숙적 자세를 가진다는 것은 그 체제에 대해서 냉소적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체제 속에서 풍요를 누리면서도 그 체제에 대해서는 마치 유행처럼 혹은 강박처럼 냉소적 비판만을 고집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80쪽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그 최선의 체제 속에 살아가면서 모방적 욕망, 경쟁적 욕망, 질투와 르상티망 등을 세계 포기적이 아니라 세계 내적으로 성찰하고 금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모방하고 질투하는 인간 호모 미메티쿠스(homo mimeticus)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이기에, 이 자체를 거세하거나 멸절하기보다는 보다 숭고한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다." 128-129쪽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의 기원과 정신 속에서 발견한 기독교적 세계 내적 금욕주의에서처럼, 우리는 세계 포기적이 아니라 세계 내적으로 떄로는 금욕하고, 명상하고, 침묵하고, 고독하고, 수직적인 지혜 등을 추구해야 한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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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인류를 보다 성숙하도록 불렀다. 기독교는 인류로 하여금 보다 복잡하고 뜨거운 질투 사회라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도록 했다. 이제는 모방적 욕망에 대한 보다 성숙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한 욕망의 독립운동이 필요하다. 교양 있고, 품격있고, 문명화된 신사는 질투의 지옥 속에 살면서도 그 뜨거운 복잡성을 관용하면서, 아프더라도 견뎌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국가(Kulturstaat)는 모방적 욕망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로 갈등 조정을 세련되고 섬세하게 할 줄 아는 국가다. 질투사회(Neidgesellschaft)가 21세기 현대인류에게 새로운 인간조건(condito humana)이라면, 이제는 모방적 욕망으로 인한 질투심과 르상티망에 대한 보다 세련되고 섬세한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 5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