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박사가 제시한 바르트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서철원 박사가 제시한 바르트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서철원의 박사 논문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자직: 창조와 성육신 관계에서 연구”이다. 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 A Study in the Relation of the Incarnation and the Creation, Amsterdam: Rodopi(1982년)이다. 튀빙겐 대학이 20세기 100대 논문 선정할 때에 선택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세윤 교수의 논문이 선정되었다. 김세윤의 논문 제목은 The Origin of Paul's Gospel(1981년)이다. 김세윤은 칼 바르트의 복음 이해를 구체화시키는 것을 목표했고, 서철원은 칼 바르트의 신학이 상승계열 기독론(혹은 앙양신학)이고, 삼위일체가 그의 신학에 없음을 밝혔다.
이번 글은 서철원의 박사논문에 게재된 각주의 글을 게시하려고 한다. 논문에 있는 각주의 글은 논문의 취지(성육신과 창조)와 부합되지 않은 내용(삼위일체)이기 때문에 지도교수인 베인호프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연구자의 주장으로 논문에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바르트의 아성으로 볼 수 있는 튀빙겐에서 20세기 100대 논문에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아마도 100대 논문에서 바르트의 신학 체계가 정통신학이 아니라고 밝힌 논문은 서철원의 논문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영미에서 칼 바르트 신학을 적요하게 비평하는 학자가 없는 실정이다.
서철원 박사의 각주에는 ‘바르트’를 ‘발트’로 진행한다(49-50쪽). 필자도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발트로 표기했는데, 지금은 바르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발트로 표기하면, 바르트로 검색할 때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말 표기로는 ‘발트’가 맞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고전적으로는 ‘빨트’라고 했다(참고, 박아론, “칼 빨트의 신관”, 「신학지남」, 128호(1964년), 편집실, “칼 빨트 생애와 사상”, 「기독교사상」, 5(5)(1961년), 『칼 빨트의 신학』(Berkouwer 저/조동진 역/1962년 초판, 박윤선, “칼 빨트의 성경관에 대한 비평”, 1937년 7월 「신학지남」 94호(19/4)에 쓴 첫 신학논문이다. 두 번째 신학논문인 “빨트의 계시관 비평”(「신학지남」 95호, 19/5)에서 성경관적 오류를 지적하고 사변주의 신학을 배격했다. 아래는 서철원 박사의 논문에 있는 각주 부분 전체를 번역해서 올린다.
《칼 발트의 기본적인 논제 핵심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God is one) 것이다. KD, III/1, p. 204, 205, 208과 여러 곳들을 참조하라. 발트는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을 말하는 정통 신학 용어를 취하지 않았다. 발트는 정통 신학의 삼위 용어를 사용하면 삼신론이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실체) 안의 위격(subsistentia in Dei essentia)에서 ‘위격’이란 용어를 정의한 칼빈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Inst. I. 13. 6; KD, I/1, p. 379, 381). 그러나 발트는 ‘위격’ 대체할 ‘존재방식’(Seinsweise) 창안해서 한 하나님 체계를 구축했다.
발트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자기 이해의 근거가 성경 계시에 있음을 밝히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계시가 삼위일체 교리의 뿌리이며(KD, I/1, p. 320ff),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계시하는 하나님은 자기 계시이다(sein Sich-Offenbaren; KD, I/1, p. 314∼5).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술어인데(predicate) 그것이 하나님 자기와 동일화된다. 다시 말해 자기를 계시하는 하나님은 계시이며,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향이다. 계시하는 하나님과 계시와 그리고 영향 사이에 분리될 수 없는 통일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존재의 삼중 양식에서 한 분으로서 존재하는데(KD, I/1, p. 315), 그것은 계시가 말씀하는 하나님의 인격, “Dei loquentis persona”(KD. I/1, p. 320)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기 계시이므로(KD, I/1, p. 324) 신적 계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동일시된다(KD, I/1, p. 321). 이런 방식으로 성경적 계시는 그 자체가 삼위일체 교리의 뿌리가 된다(KD, I/1, p. 325, 329, 그 외에 여러 곳).
계시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구별할 수 있지만 동일한 한 분으로 남는다.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은 숨겨진 하나님(Deus absconditus)이다(KD, I/1, p. 337~338).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된 존재이기 때문에(... eines Offenbarseins Gottes; KD, I/1, p. 349), 하나님은 자기를 드러내는 한편, 자기를 숨기며, 계시 속에서 형태를 취한다(KD, I/1, p. 341).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삼중 반복(threefold repetition) 속에 한 하나님이며, 이 반복은 그의 신성 안에 기초한다는 것을 나타낸다(KD, I/1, p. 369). 다시 말해, 계시된 하나님의 계시된 통일성 개념은 하나님의 본질 내 존재 구별을 가리킨다.
이 구별은 삼 위격의 구별이 아니며, 하나님 내 존재의 세 양식(drei “Seinsweisen” in Gott)이다(KD, I/1, p. 374). 발트는 위격에 대한 정통적인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면서 대신에 존재 양식을 사용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세 존재 양식 안에서 한 분이며,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한 주님이시므로 한 인격적인 하나님(der eine persönliche Gott)이라고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KD, I/1, p. 379).
계시에서 한 하나님의 삼중(threeness, Dreiheit), 계시자, 계시, 계시됨으로 삼중(threeness)이다. 그것은 거룩함, 자비, 사랑의 세 요소와 창조주 하나님, 화해자, 그리고 구속주의 세 요소에 대응한다. 계시자, 계시, 계시됨의 세 요소 중 계시자는 계시의 기원과 근거를 지시하는데, 이것은 곧 계시자 자신이 계시와는 구별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계시는 계시자의 신비와 대조적으로 계시 안에 새롭게 명시된 어떤 것을 가리킨다. 계시됨은 계시자의 의도, 그러므로 계시의 의미를 뜻한다. 즉 그 세 요소는 하나님의 숨김, 드러냄, 그리고 통보를 가리킨다(KD, I/1, p. 383).
발트는 화자, 자기의 말, 그리고 의미, 화자의 말을 들은 담지자가 담은 의미의 구도가 되는 화자의 유비를 하나님의 이 세 요소로 설명한 것이다(KD, I/1, p. 384). 하나님 속에 있는 세 위격, 곧 아버지, 아들, 성령을 한 하나님의 존재 양식으로 명명시켰다(KD, I/1, p. 386, 403). 아버지는 자기 숨김과 거룩함 속에 있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아들은 자기 현시와 자비 속에 있는 하나님을 지정하며, 성령은 자기 통보와 사랑 속에 있는 하나님으로 명명시켰다(KD, I/1, p. 401/2). 이런 방식으로 발트는 계시자를 아버지, 계시를 아들, 계시됨을 성령으로 동일시했다(KD, II/1, p. 294). 그리하여 하나님은 자기 계시 속에서 삼중적으로(Triune) 존재하는데(KD, II/1, p. 364),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자기 계시 행동이기 때문이다(KD, II/1, p. 293).》
서철원 박사는 바르트가 정통적 삼위일체에서 한 하나님 구도로 전환시켰으며(위격에서 존재양식),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행동으로 전환시켰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바르트 신학의 아성인 튀빙겐에서 합당하게 받았다. 바르트에게 Trinity 체계가 있다는 것은 부당하고, 바르트에게 Trinity(존재로서 한 실체에 세 위격)가 아닌 Triune God(삼중 존재양식의 행동으로서 한 신)이 있다.
형람서원 고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