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3.1. 하나님에 관한 진술과 교회선포(박순경, 79-108)
§ 3.1. 하나님에 관한 진술과 교회선포(박순경, 79-108) Karl Barth / 기독교 연구 |
§ 3. 교의학의 재료가 되는 교회 선포
1. Rede von Gott und kirchliche Verkündigung (47-73)
1. Talk about God and Church Proclamation(47-71)
1. 하나님에 관한 진술과 교회선포(박순경, 79-108)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교회 선포(고경태)
[복습] 바르트는 ‘교회’를 사람들이 공동 정신(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음)을 갖고서 모인 곳이라고 한다. 이것은 슐라이어마허의 규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의학의 재료’를 ‘성경과 교리(norma normans(1규범)와 norma normata(2규범))’가 아닌, 현재 교회에서 행하는 ‘인간 이야기’로 규정한다. 비록 ‘설교와 성례전’을 반복하지만, ‘인간의 요청과 위탁에 의한’ 산물이다.
1. ‘모든 인간 이야기’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구분하면서 §3.1(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교회 선포)을 시작한다(79쪽). 우리는 ‘Rede(talk)’를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다. 박순경은 ‘진술’, 김재진은 ‘언설’로 번역했다. 분명한 것은 ‘설교, 선포’는 아니다.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인간 이야기’가 ‘어떻게 선포(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지를 진술하려고 한다. 인간 언어(행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거부할 사람이 없다. 바르트는 인간 언어 방식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장 정형화된 형식이 인간 언어일 뿐이다.
2. 바르트는 ‘모든 인간 이야기’에서 종교적인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로 구분되는 것을 ‘세속적인 현존과 성화된 현존(geheiligten Dasein)’으로 제시했다(80쪽). 동일한 인간 이야기에서 성화된 현존이 구분되는 것인데, 이것을 ‘잠정적인 분리(예비적 구분)’ 상태라고 제시했다(80쪽). 그리고 인간 이야기들은 ‘그림자(Schatten)’의 역할을 한다. 칼 바르트는 ‘구약과 신약’의 ‘그림자’ 비유를 인간 이야기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한 것이다. 바르트에게 구약과 신약의 구분은 없고, 단순히 계시 경험에 대한 동일한 기록물로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바르트에게 ‘모든 인간 이야기’는 신의 행동(den Gott der Handelnde, God Himself acts)에 의해서 신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되는 ‘사건(Ereignis)’ 이전의 상태인 것이다.
바르트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역사적 교회에 매여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80쪽). 결국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어떤 언어나 행위와 관계없이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동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이 행동이 없는 인간의 모든 이야기(혹은 모든 배치)는 예비 상태가 된다.
3. 바르트는 하느님의 행위를 말하면서, 인간의 어떤 행위를 부정하는 강한 자세를 보인다(81쪽). 인간은 임의성이고 어둠이다. 바르트는 요 1:5에서 ‘어둠’을 ‘인간’으로 연결시켰다. 요 1:5에서 어둠은 빛을 반역한 세력으로 사탄과 사탄의 종에 대한 제시이지, ‘인간 총체’로 제시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르트가 제시하는 말은 개혁신학이 아주 사랑하는 문구인 ubi et quando visum est Deo이다(81쪽). ‘개혁신학 정수(精髓)’ 문장을 가지고, ‘현대신학 정수’로 전환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개혁신학과 현대신학의 정수 문장은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데, 현대신학은 하느님의 자유로 인간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인간 가치를 절대 부정하는데, 결국 인간이 스스로 결단해서 하느님의 지식을 소유하고 향유하는 존재로 극부상한다. ‘하느님의 자유’와 ‘인간의 결단’이 등치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4. 바르트에게 ‘성화’는 ‘인간 성화’가 아니고, ‘교회 성화’이다(82쪽). 바르트는 인간 성화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유시켰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인격 행동에 의해서 성화되었고,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교회에서 이야기를 진행함으로 교회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장소가 된다는 도식을 제안한 것이다(82쪽). 바르트는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행동 인격인지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는 독단을 보인다. 그 이전에 없었던 견해를 제시하려면 생각의 근원을 밝혀야 하는데 독단적인 주장을 거리낌 없이 제시하고 있다.
5. 바르트가 제시하는 자기 부정 구도가 있다. 그것은 교회예배에서 설교자는 자기 언어가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도성을 부정해야 한다. 예배에 참여하는 참여자들도 자기들이 하느님께 예배한다는 의식을 부정해야 한다. 모든 인간성을 부정하는 도식이다. 인간은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에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82쪽). 인간이 부정된 상태에서 하느님의 자유가 만나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가 발생할 때 인간 행위는 하느님 행위가 된다.
바르트의 주장은 인간이 의도해서 하느님에 관한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매력적인 주장이다. 인간적인 형태를 로마 카톨릭의 예전 형태를 제시했다. 자기 주장 근거로 루터가 1544년 토르가우 성곽교회에서 행한 설교를 근거로 제시했다(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