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는 신학을 "기독교적 철학"으로 제시하였고(30), "세계에 대한 절망에서 희망을 주는 역할"로 기독교적 희망을 결속할 것을 제안하였다(30). 그리고 모든 제 학문과 연계하는 것을 필수적인 과제로 제시하였다. 발트는 신학이 교회의 특수적 상황에 놓이는 것을 참아낼 수 없는 공백, 부당한 영예(많거나 적거나)를 주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결국 신학이 한 학문(ein Wissenschaft)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31). 발트는 옛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 초기에는 ‘학문’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후기에‘교의학’으로 전향되었다고 하였다.
발트는 신학이 학문이 될 수 있도록, 신학을 정의한다. 1. 신학은 모든 학문과 동일하게 특정한 인식대상에 대한 인간적 노력이다. 2. 신학은 한 특정한 자체 안에서 일관된 인식의 길을 걷는다. 3. 학문들과 동일하게 학문 자체를 모든 사람에게 자기 길에 대해서 해명하는 자리가 있다. 모든 학문들은 공리와 방법들이 있는데, 신학은 자체의 과제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서 신학이 제 학문에 종속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33).
비록 신학이 과학적 학문으로 일컬어진다 할지라도 다른 학문의 척도에 의해서 측정될 의무를 수용할 필요는 없다. ‘학문으로서 신학’은 슐라이어마허 이래로 꾸준히 시도가 있었다. 신학이 ‘학문성(Wissenschaftkeit)’이 있다는 것은, 학문이란 이름으로 "최종법정적 전권을 가진 학문 이론"은 없다. 결국 신학이 고수해야 할 것은‘실천적 관심’이다.[->필자는 신학은 역사적이고 법적인 권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 권위체(공회의)가 결정한 법적이고 공적 문서가 신학이다. 교회 역사는 법적 문서를 인정해야 역사적 교회가 된다.]
1. 신학이 학문으로서 진리를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고 학문으로 세속성을 회상하게 된다. 그러나 신학은 세속성에서 최고의 영역들에서도 상대적으로 특수한 길에서 그 일을 수행한다.
2. 신학을 학문 개념이지만, 신학은 이교도적인 학문 개념에 대해서 필요한 항의를 천명한다. [발트 이 이교도적 영향을 아리스토텔레스로 제시하였다.]
3. 신학이 학문이기 때문에 우상숭배(Heidetum, heathenism)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학 과제를 부정하고, 참아낼 수 없는 학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를 교회의 산물로 간주한다. [발트가 생각하는 원초적 우상숭배는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다]
[-> 발트는 기독교 신학을 학문으로 구축하려고 한다. 신학이 학문이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발트는 이것이 슐라이어마허 이래로 꾸준히 시도되었다고 하였다. 발트는 신학을 학문이라고 하면서, 첫째 절대가치를 제거하고 실천을 주요목적으로 하였다. 둘째, 신학을 인간적인 노력으로 규정하여, 계시의존의 자세를 거부하였다. 셋째, 신학이 학문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거부하는 것들도 교회의 산물로 평가하며,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발트는 ‘개인이’ ‘스스로’ 기독교 교회에서 이루어진 모든 신학 내용을 포괄하여 다시 재정립하는 과정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정립된 신학은 ‘기독교 신학’이 아니고, ‘교회신학’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발트는 ‘기독교교의학’이 아닌 ‘교회교의학’을 집필하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