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연구

삼위일체와 성령의 내주에 대한 이해

형람서원 2014. 5. 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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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와 성령의 내주에 대한 이해
기사입력 2014-05-14 오전 10:58:00 | 최종수정 2014-05-14 10:58   

Since the three Persons of the Trinity possess the same identical, Each is truly God, exercising the same power, partaking equally of the Divine glory, and entitled to the same worship. When the word "Father" is used in our prayers, as for example in the Lord’s prayer, it does not refer exclusively to the first person of the Trinity, but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 The Triune God is our Father.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주기도문의 말씀에서, 우리의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그것은 배타적으로 삼일성의 첫째 위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로레인 뵈트너이 주기도문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이해이다. 이는 예배와 기도의 대상에 대해서 명료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예배와 기도의 대상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예배와 기도는 누구에게 드리는 것인가? 요한계시록에 너무나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등장하는 “하늘의 보좌” 그 위에 앉으신 이(1-3절), 그 주위에는 24 보좌에 24장로가 머리 금면류관을 쓰고, 보좌 앞에는 유리바다, 네 생물이 있다.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주 하나님”으로 경배한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을 ‘어린양’이 취하자 24장로들이 구속의 찬양과 영원한 권세를 찬양하며 경배한다. 요한계시록 5:8에서 “성도의 기도들”을 24장로들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으로 어린양께 드린다. 즉 기도와 예배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을 취하신 어린양”께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의 말씀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가 된다. 그리고 24장로와 천군천사의 천천과 만만이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구속의 영광을 세세토록 드린다.  

“the three Persons of the Trinity”과 “the Divine of God”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위격person은 세 위격으로 구분되지만, 신성은 세 신성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는 신성에서 동일하지만 위격에서 구분하다. 신성에서 동일은 창조와 구속 모든 사역에서 공히 함께 하시며 공히 함께 영광을 받으심이다. 그러나 사역에서 역할이 구분되신다. 성육신은 성부와 성령이 아닌 성자께서 이루셨다. 신자의 내주하는 것은 성부와 성자가 아닌 성령께서 이루신다. 그러나 성육신에서 성자를 잉태하게하시는 일은 성령께서 하셨고, 신자에 내주하는 성령의 일은 성자께서 보내심으로 이루어진다. 성부께서는 성령으로 성자를 보내시고(발생, begotten), 성자와 함께 성령을 보내신다(발출, proceed).

로레인 뵈트너는 “The Triune God”과 “the three Persons of the Trinity”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하여 인격과 본체를 분별하지 않았다고 본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한 위격에 두 본성”이라는 신비로운 문장을 고백했다(451년 칼게톤 공회의). “한 신성의 두 본성”이 아니다. 즉 성자의 신성의 성육신이 아니라 성자의 위격의 성육신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내주도 성령의 신성의 내주가 아니라 성령의 위격의 내주라고 보는 것이 개혁파의 이해이다. 그래서 “성령의 내주”가 “삼위일체의 내주”라고 할 때에 신성의 내주로 보는 것은 신비주의적인 신일합일이 된다. “성령의 내주”가 “삼위일체의 내주”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구원이 “삼위일체의 구속언약(pactum salutis)”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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