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읽기. 창세기(3) 1장과 2장
재미있는 성경읽기. 창세기(3) 1장과 2장
창세기 1장의 1절과 3절, 1장과 2장의 관계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중조설(重造說, Gap Theory)로 창조가 2차에 걸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천사의 타락으로 인해, 2차로 창조로 지구를 조성했다는 견해다. 유재원 교수는 창조와 재정비 창조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 바르지 못함을 피력했다(유재원, [창세기 강해 1장], 27). 창조에 대한 중조설의 이해 방식은 귀신파의 성경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진화론과 지질학적 연대 추정과 조화를 이루는 긴 연대론(a long period theory)이다.
창세기 1장과 창세기 2장에서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명칭이 등장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 엘로힘”이고, 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엘로힘”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이러한 다른 신명(神命)에서 “문서설”(E문서, J문서)이 제안되어 모세오경, 창세기의 모세저작이 부인되기도 한다(프랑스의 의사인 진 아스트룩(Jean Astruc, 1684-1766)가 창세기연구(1753년)에서 제시하였고, 1878년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이 이스라엘의 역사 서설(1878년)에서 J.E.D.P 문서설로 체계화했다).
먼저 성경은 처음 기록에는 장과 절이 없다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장절이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힌 것은 16세기 “제네바성경”이다. 효과적인 성경 읽기를 위해서 장절이 구분되면서 좋지 않은 현상들이 발생한 것도 있다. 자연스러운 글을 장과 절로 구분하는 것이며, 장과 절의 구분까지 정경적 권위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창세기 1창은 창조 전체에 대한 말씀이고, 2장은 인간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다. 2장에 1-3절까지 안식일에 대한 규례가 제시되었다. 4절에 “대략”(개역), “내력”(개역개정, 바른성경)은 “톨레돗(toledot)”에 대한 번역으로 창세기 이해의 중요한 단어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인간의 창조와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이 기록되었다. 1장의 문화명령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둘째 아담의 사역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셋째, 자기의 필요를 따라서 돕는 배필과 한 몸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사는 에덴을 최적의 환경으로 조성하고 아담이 거주하도록 하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일을 하며(이름을 지으며), 돕는 배필과 함께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아담이 죄가 없는 상태에 누리는 상태였다. 우리는 그것을 지복(至福)의 상태로 이해하지만, 아담은 그곳의 생활에 불편을 느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관계는 창조와 인간의 역할에 대한 창조 경륜이 제시되었다. 범죄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며, 창조 사역, 가정 이룸으로 생활이 구성되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 “여호와 하나님” 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교제는 “존재와 존재”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장에서 신명(神命)인 “여호와”가 등장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 관계가 설정된다. 여호와 하나님과 아담이 체결한 “첫언약”이 창세기 2장에 기록된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첫언약, 아담언약)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간혹 있다. 그러나 첫언약은 창세기 2장 즉 창조의 시작(6일째)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첫언약의 파기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그리스도 구속으로 회복된 백성은 죄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영생의 도입을 위한 죽음이 된다. 인간이 갖는 생과 사의 원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생과 사에 하나님의 경륜을 명확하게 제시한다(욥 1:21, 2:10).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광주성경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