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학&개혁신학

3. 벨직신앙고백서(1561)와 기 드 브레(Guido de Bres)

형람서원 2013. 7. 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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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서와 작성자들>

3. 벨직신앙고백서(1561)와 기 드 브레(Guido de Bres)

벨직신앙고백서의 가장 많은부분을 맡은 이는 기 드 브레였다.
그는 1523년 헤이그의 Mons에서 태어나 개혁교회 안에서 성장하였다.
칼5세의 명령으로 유럽전역에서 박해가 시작되자, 에드워드 6세의 런던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목사직을 수행하고 로잔에서 공부한 후에 다시 벨기에 남서부와 프랑스 북부지역의 순회설교자로 사역하다가 체포되어 브뤼셀에서 1567년 5월 31일 교수형을 당하였다.

벨직신앙고백서는 1561년 개혁교회의 신앙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레이든대학교수 Adrien de Saravia, 오렌지공 윌리엄의 궁정목사 H.odetus, 그리고 G.Wingen의 도움을...
받아 불어로 작성하였다가, 칼빈의 제자이며 레이든대학교수 Bourges의 Francis Junius(1545-1602)에 의해 개정되었다. Juniusms 는 이 신앙고백서를 제네바로 보내 승인받았다.

1562년에서 1566년 사이에 출판되고, 화란어, 라틴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출판되었다. 또한 1562년 이 고백서는 당시에 네델란드 남부를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 필리페2세에게 보내어 관용정책을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 일로 반역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10만명이 넘는 순교자들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고, 현재까지 이 지역은 벨기에로 남아 카톨릭교회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벨직신앙고백서가 처음으로 공적으로 채택된 것은 안트워프회의(1566)와 베셀회의(1568)이었으며, 이어서 엠덴총회(1571)과 도르트총회(1574), 미델부르크총회(1581),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르트총회에서 1619년 4월 29일 공인되었다. 그리고 총회는 불어, 라틴어, 화란어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현재 미주개혁(화란)교회의 교리적 표준이기도 하다.

- 신앙을 드러냄으로 인해 생명을 내 놓아야만 했던 진실하고 소중한 신앙의 선배들의 전통이 우리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김종욱 목사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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