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 시편 주석 독서] 시편 1 편

형람서원 2012. 10. 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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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시편 주석 독서]

시편 1 편

 

고경태 목사

 

1-2절 복있는 사람, 복있는 사람은 단수형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종으로 항상 율법을 연구하여 정진을 이룸에 힘쓰는 사람이다. 복(福)은 아쉬레(אשרי)로 바루크(ךורב)와 다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연구에 전심전력을 하는 종들에게 선물을 주심은 확실하다. 그것은 율법을 꾸준히 탐구하면서 오는 기쁨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데 먼저 방해되는 요소들(부정적)을 제기했다. 이러한 모습을 피하지 않고서는 율법을 연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인의 꾀(걷다), 죄인의 길(서다), 오만한 자의 자리(앉다)는 거부되어야 한다. 죄의 유혹에 대해서 경계를 갖고 있는 자세, 불경건한 자들과 교제가 단절되어야 하는 필연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부패된 우리에게 더 큰 감염을 줄 것이다.

 

칼빈은 불경건한 자들이 비참함에 있는 것과 또한 경건한 자가 그들에게서 떠나야 함을 제시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본성을 따르다보면 죄악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악인들과 완전히 결별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강한 권면을 반복하여 표현했다.

칼빈은 “오만한 자”에 대해서 강하게 표현했다. 오만한 자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두려움이 없는 악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으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경건한 사람이다. 경건의 표준을 자신의 견해에 따라서 신앙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성경 전체는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해설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교훈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율법을 사랑함과 한결같은 묵상하는 경건한 사람이 진정한 학생이다.

 

3절. 시편 기자는 은유법(metaphor)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신 복(happy)은 세상의 허황된 기쁨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다. 시냇가의 심겨진 나무는 토질의 불모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세상의 사람들이 보기에 복 있는 사람이 말라보여도 재물과 영예가 넘쳐 흘린다. 반대로 보기에 풍성하여도 땅 속에 뿌리를 박지 못했다면 충분한 수분이 공급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며, 때를 맞추어 잘 성취는 것이다.

 

4절. 시편 기자는 예레미야가 악인을 광야의 떨기나무(heath, 렘 17:6)에 비유하듯이, 바로 시들어버리는 나무로 비교했다. 그런데 악인이 장엄한 나무처럼 높이 올라가고 크게 보인다할지라도,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입김으로 언제든지 쭉정이처럼 날려 보내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5-6절. 선지자는 복된 생활(happy life)은 선한 양심에 달려 있다는 것이며, 경건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복이 갑자기 사라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복은 선한 양심의 내적 복이다(happiness is the inward blessing of a good conscience).

여호와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심판을 행사하실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일한 심판자라는 위대한 원리를 명심해야 한다.

경건한 사람은 세상의 불경건한 사람의 환상적인 즐거움에 속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혼란에서 질서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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