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자의 예정론(1555년), Tabula Praedestinationis
Tabula Praedestinationis
Theodore Beza
Geneva, 1555
trans. William Whittingham (1575)
revised by R. Scott Clark (2002)
[베자의 예정론]은 안성균 2004년 당시 강도사님이 번역한 것입니다. (pp. 10-21)
베자의 생애에서 베자(Theodore Beza, 1519-1605)는 Reformed Theologian(개혁신학자)로 정의했습니다. 제네바의 후임으로 사역한 베자에게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 많은 중상모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비판 중에는 칼빈의 순수한 교리를 부패시키고 칼빈의 가르침을 왜곡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특히 베자가 칼빈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가르침을 변경했다고 로마 교회에서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개혁교회가 칼빈이 아닌 베자의 가르침으로 예정론이 강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칼빈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평운동을 제안했습니다.
베자는 1529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었고, 칼빈이 배웠던 볼마르(Melchior Wolmar)에게 공부하였습니다. 1534년 벽보사건으로 볼마르는 고향인 독일로 피신했습니다. 베자는 칼빈처럼 오를레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문학도 공부하여 당대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베자는 안정적인 수입(golden crowns)과 프랑스 최상류층의 생활을 떠났습니다.
베자는 쯔빙글리처럼 중한 질병에서 깊은 숙고함으로 회심했습니다. 박해가 있는 프랑스를 약혼자와 함께 떠나 칼빈에게 피신했습니다. 제네바에서 약혼자 클라우딘(Claudine)과 혼인하고, 삐에르 비레(Peter Viret)의 영향으로 로잔에 있는 대학에서 희랍어 교수를 했습니다.
제네바에서 사역한 칼빈은 베자를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수로 청빙했습니다. 로잔은 그가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베자는 칼빈과 사역하고 싶은 마음에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1559년부터 1599까지, 칼빈이 죽기 전 1563년부터 교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1599에서 1605년까지(86세) 제네바 교회의 목사로 사역했습니다.
베자는 죤 낙스와 함께 공부했고, 베자의 밑에 야곱 알미니우스가 공부했습니다. 알미니우스는 베자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독을 뻐뜨리기 위해 네델란드로 갔습니다.
베자는 칼빈의 장례식에 설교를 했고, 칼빈의 전기를 기록했습니다.
베자는 독특한 신학 체계를 이룬 학자는 아니지만, 탁월함과 박식함과 깊은 경건세계는 광대했습니다. 그는 다방면에서 탁월한 실력을 겸비했습니다. 특히 베자 사본(Beza codex)을 가질 정도로 탁월한 어학실력과 주석, 진리변호에서는 예리한 면모로 적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예정론에서 베자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적들이 그를 두려워하면서 공격한 것입니다. 베자는 칼빈의 가르침을 변경시키지 않았습니다.
베자가 하이퍼 칼빈주의자였다면, 칼빈도 하이퍼 칼빈주의자였다.
If Beza was a Hyper-Calvinist, then so was Calvin him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