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1-33 요압의 충고?
2008년 10월 7일 화요일
사무엘하 19:1-33
제목: 요압의 충고?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에게 요압의 충고는 눈물을 그치게 하지만, 다윗의 마음은 위로하지 못한다.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1-8절. 통곡하는 다윗을 질책하는 요압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애곡함을 듣고 성읍으로 들어간다. 과연 다윗은 성문에서 울고 있었다. 이러한 다윗에게 요압은 명령을 항거한 것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질책을 한다.
3절. 승전한 군사들이 개선할 때에 부끄럽게 개선하였다. 그것은 왕의 당부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리는 왕이 원하는 전투여야 한다. 요압이 원하는 전투를 할 때에는 개선(凱旋)군은 패잔병과 같다. 요압의 승리가 다윗에게 슬픔이 되었다.
5-7절. 요압은 다윗에게 겸손한 모습이 아니라 억압적인 자세로 요구한다. 그것은 다윗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 때에는 모두 떠나버리겠다는 것이다. 곤궁에 처한 군주에게 충성을 한 요압의 저의가 무엇인가? 6절. 요압은 다윗이 신하들을 미워하고 멸시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에서 나온 억지다. 자신이 다윗의 간청을 무시한 불충을 하였으면서도, 책임을 왕에게 돌리는 억지를 부릴 뿐만 아니라, 자기 부하들을 선동한다(7절).
충(忠)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지략(智略)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충(忠)은 변하지 않는다. 충심(忠心)으로 주군(主君)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덕(德) “스러운가?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9-10절. 다윗의 슬픔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킴
다윗을 반역한 이스라엘이 압살롬을 애도하는 다윗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그들이 모셨던 왕인 압살롬이 죽자 다시 다윗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윗이 압살롬을 변하지 않고 사랑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다윗의 공적에 대한 것을 인정하고 자기들의 반역을 고백한다(9-10절). 이스라엘이 직접 압살롬에게 기름을 부었으나 무지한 이스라엘의 소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왕에게 기름부음은 여호와의 계시가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나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나라이다.
그러한 압살롬과 이스라엘을 향해서 다윗은 변하지 않고 사랑을 계속하였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를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억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