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Re: 베드로전서 2 장 1-5 (칼빈주석)

형람서원 2008. 7. 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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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eter. Ch. 2

 

1 Peter 2:1-5

1. Wherefore laying aside all malice, and all guile, and hypocrisies, and envies, and all evil speakings,

2. 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

3. If so be ye have tasted that the Lord is gracious.

4. To whom coming, as unto a living stone, disallowed indeed of men, but chosen of God, and precious,

5. Ye also, as lively stones, are built up a spiritual house, an holy priesthood, to offer up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by Jesus Christ

1.Proinde deposita omni malitia et omni dolo et simulationibus et invidiis et omnibus obtrectationibus

2. Tanquam modò geniti infantes, lac rationale et dolo vacuum appetite, ut per illud subolescatis:

3. Si quidem gustastis quòd benignus sit Dominus;

4. Ad quem accedentes, qui est lapis vivus, ab hominibus quidera reprobatus, apud Deum vero electus ac pretiosus;

5. Ipsi quoque tanquam vivi lapides, aedificamini, domus spirituales, sacerdotium sanctum, ad offerendas spirituales hostias, acceptas Deo per Jesum Christum.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났음으로 이제는 중생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한다. 갈 5:25의 바울의 권면과 같이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제시한다. 새로운 피조물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지 못하게 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갓난 아이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갓난 아이에게 있는 모든 악이 없는 순전한 모습은 계속적으로 지녀야 한다. 갓난 아이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1. All malice 사도는 중생한 백성의 합당한 삶을 위해서, 먼저 우리가 버려야 할 죄악의 항목을 ‘모두’라고 하여 완전히 제거할 것을 제시한다(갈 5:19). 이러한 옛 사람, 악독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본 절은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과 같은 과거 생활의 일들을 다 버렸으니 이제부터는 그와 정반대되는 일, 즉 순전하고 신령한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 새로운 생활이다. 우리 전체의 삶에서 죄악을 버려 새로운 삶, 새로운 도덕을 세워야 한다.

 

2.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에라스무스의 번역, ‘젖은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것이다( “Milk not for the body but for the soul;”)’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본 절은 고전 14:20의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와 일치한다. 즉 젖을 좋아하는 아이를 찬양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마 10:16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말씀과 일치된다.

‘젖’은 단순한 교수법, 종교의 기초 교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도는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자라가야 한다. 본 절의 ‘갓난아이’는 어른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옛사람과 옛생활과 대치된다. 중생한 갓난아이는 영구적인 아기이므로 베드로는 젖을 하나의 영구적인 자양물로 추천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이 자양물을 공급받아 자신들이 자라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3 If so be that ye have tasted; or, If indeed ye have tasted. 시편 34편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 맛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맛은 주의 인자하심(the Lord is gracious)이다. 그리스도인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고, 주의 인자하심의 맛을 내어야 하는 소금(요리사)이다.

 

4. To whom coming 본 절은 그리스도 인격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신 하나님을 언급한다. 플라톤이 아주 멀리서 희미하게 바라본 것을 확신했는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우리야말로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다. 플라톤의 제자와 성경의 제자

베드로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그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과 연결시키고 잇음에 유의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준엄하신 분으로 생각하면서 그를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성도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는 자신까지도 잊고 서둘러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된다. 복음 안에서 자라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세상의 멸시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그의 가치와 존귀를 유지하고 계시므로 그를 조금도 경(輕)히 여길 분으로 생각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5. Ye also, as lively or living stones, are built up 동사는 직설법인 동시에 명령법도 될 수 있다. 어느 것을 택하든지 신자들은 하나님께 하나의 영적 성전(a spiritual temple)으로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심의 목적에서 우리의 의무를 도출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서로 연합하여 모두가 하나로 연합하고 서로 사랑으로 굳게 연합되어 전체가 한 성전을 이루어야 한다. 각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의 성전인 것이 사실이므로 모두가 다 서로 연합해서 하나의 보편적인 성전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를 ‘산 돌’과 ‘신령한 집’으로 지칭함으로 ‘산돌이신 그리스도’, 모세의 율법 아래서 제정되었던 옛 성막과 그 모든 제도들이 예표해 온 하늘의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A holy priesthood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사 안에 거하실 뿐만 아니라 경배를 받으실 성전으로 삼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다. 신령한 제사는 로마서 12:1에서 자신의 몸을 드릴 것을 지적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지 않는 한 그에게 아무것도 드릴 수가 없다.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자기부정(denying ourselves)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기도, 감사, 구제, 그 밖의 신앙의 의무들이 따르게 된다. 제사장이 제물로 자기의 몸을 드리는 방식은 구주께서 제정하신 방법이다. 거룩한 제사장이 된 우리는 레위 반열이 아닌, 그리스도의 반열의 제사장으로서 자기의 몸을 직접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Acceptable to God.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그를 기쁘시게 하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우리에게 보통 격려와 자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드리는 제사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드리는 제사여야만 된다. 우리는 자기부인을 완전히 할 수 없고, 기도에 대한 열매를 낼만큼 신실하지 않고, 선을 행할 열심도 부지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그리스도의 호의로 제사를 드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기쁘시게 우리의 제사를 받으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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