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기독교의 본질] - 제 3 강
제 3 강
우리는 전 강의에 있어서 복음서들과 [예수]의 발전에 대한 복음서들의 침묵에 관해서 말했으며 또 [예수]의 설교 방법의 특성을 간단하게 첨가하여 두었다. 예수는 지상적인 것의 포피(包皮,circumcise)를 통해서 모든 것을 보았고 어디서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했다.
[세례 요한: 예수 이전에 활동한 유태인]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심판의 결정이 바른 행위에 달려있음으로 회개하라고 전하였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었고, 석청과 메뚜기를 먹고 광야에 거하였지만 금욕적 생활을 강조하지 않았으며, 모든 계층(세리, 군사)에 회개를 전파했다. 심판날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양심과 도덕적 행위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의 도덕은 세련된 도덕이 아니라 단순한 도덕이었다. 문제되는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한의 문제가 성자의 영원한 권리라는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심판의 날의 도래, 뿌리에 놓은 도끼, 태워버리는 불등에 관해서 말했겠는가? = 종말론적 구조
둘째, 광야에서의 회개의 세례와 장차 올 심판의 설교와는 당시의 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상태의 단순한 반영이 아닌가?
셋째, 과연 그렇다면 이 선전은 도대체 유태교에 있어서는 이전에 이미 언급되어본 적이 없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포함하고 있는가?
먼저, 종말론적 구조: 종교는 하나님과 같이하는 생활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의와 책임에의 계시이기도 하다. 이 계시에 접한 자는 그것 없이는 인생의 의미가 없으며, 개인이나 사회도 목표없이 방황하게 되고 또 넘어지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이렇게 백성들이 방황하는 것을 지적하여 “돌아오라”고 권고하게 된다. 그리고 회개의 운동과 함께 미래에 도래에 대한 관념을 성립하게 된다. 그 각기 어떠한 형태로 옷을 입고 시대사적 상황과 관련되어 중요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종말론적 사고는 새롭게 제시될 수 있다.
둘째, 종교적 운동인가? 정치적 사회적 운동인가? 당시 유태 지역은 평화를 상실한지 200년이 지났다. 세례 요한은 도덕력에 호소하며 영원으로 이끌었다. 독일에서 피히테가 유명한 강연을 통해서 독일국민에게 검을 잡을 것을 호소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회개와 내적 개전(改悛)이었다.
셋째, 세례 요한의 선포는 새로운 것인가? 하나님의 주권를 선포하는 것은 새로운 사조인가? 세례 요한이나 예수가 새롭게 일으킨 것은 무엇인가? 예수 이전에 이미 종교는 존재했었고, 일신교도 오래전에 확립되었는데 무엇이 새롭겠는가? 일신론적 경건의 유형은 오래전에 여기저기서 나타났으며 모든 학파 중에 아니 한 국민 가운데서도 나타났다. 시편 기자, 미가 선지자가 이미 유일신앙을 고백했다. 나(하르낙)는 벨하우젠과 함께 대답한다. “확실히 예수가 선포한 것, 또 그 이전에 세례 요한이 회개에 대한 설교에서 선포한 것은 이미 예언자들에게서 그리고 당시의 유태 전승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바리새인도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선하고 성스러운 것은 넓은 지상적 표면위에 한 낱의 씨알에 지나지 않는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회개에 미친 것은 관권적 보호자와 충돌을 피하기였다.
[이 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예수는 자신보다 먼저 시작한 요한을 선구자로 인정했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요한이 시작한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의 운동에 만족하지 않고 ‘기쁨’을 전함으로 ‘복음’을 선포하였다.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부르는 말씀이 예수의 활동과 선교를 집했다. 이것이 요한의 메시지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령의 고귀함을 전파한 것이다.
2. 예수의 설교의 특성
예수의 설교를 통관(通觀)해보면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도래, 둘째,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정신의 무한한 가치, 셋째, 보다 나은 의와 사랑의 계명이다. 예수 설교의 위대함과 힘은 단순하며 동시에 풍부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말씀은 2000년을 가로질어 현재에도 여전히 새로움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1)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도래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교에는 구약적 색채를 띤 예언자적인 심판의 날과 장래 나타날 가시적인 하나님의 지배에 대한 지지로부터 다른 한편 현재 예수의 사명과 함께 시작되는 내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식과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 그가 배척한 것은 오직 지상적인 정치적 행복주의에 대한 기대였다.
예수는 세상 나라가 사탄과 악령에 지배받는 것으로 보았다. 이 세상 나라는 멸망해야 되고,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야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극적, 미래적인 면과 너희들 가운데 있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설교에서 전승과 독창적인 것, 핵심과 외피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지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