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타임스

조선 시대 양반 비율 연구에 대해서....

형람서원 2025. 4. 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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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케(四方博)의 저서 『조선 경제의 연구 3』에 따르면, 1858년 대구 지역의 호적을 분석한 결과 양반 호수가 전체 호수의 70.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현필의 분석은 편향성이 심하다. 그것은 철종 시대는 조선 말기로 무질서가 증가하던 때인데, 황현필은 그 지표로 신분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선 농민이 일본의 농민보다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강의하고 있다. 황현필은 양반과 상민, 노미를 신분 제도의 상승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신분제도(계급적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황현필의 강의 내용이라면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일본에게 조선, 대한제국이 강제 병합되었다는 것이다.

 

 

일반 역사에서 조선 후기의 양반의 증가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데(공명첩, 매관매직, 가짜 족보 등), 황현필은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로 분석해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네요... [우리역사넷]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네요..

=> 황현필은 우리의 상태가 낮은 때가 일제강점기라고 강의하는데, 당시 문제는 조선, 대한제국이 일본에 대한 사대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피지배층이 지배층보다 살기 좋은 나라였다"는 강의는 역사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지배층은 더 우월한 경제, 군사력으로 지배하는 것이지, 덜 우월한 경제 수준을 동경하는 지도자나 평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황현필이 가져온 자료는 시카타 히로시(四方 博, 사방박)가 발표한 대구 지역에 한정된 연구 자료인데, 다른 자료에는 조선 후기 양반 비율이 1.9%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 말에 이르면 70~8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신분제가 사실상 의미를 갖지 못하고 고종 대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계기가 되었다. 한 자료에 편중해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편향성을 피할 수 없다.

 형람서원 고경태

시카타 히로시(四方 博) Shikata Hiroshi

  • 四方博, 『朝鮮経済の研究 3』, 東京大学出版会, 1976.
  • 사방박,<리조인구に관する신분계급별적관찰>(≪조선경제の연구≫3, 1938), 388∼389쪽.
  • 조동걸 외, 『한국사강의』, 한울아카데미, 2004.
  • 김호섭, 「조선후기 양반 인식의 변화」, 『한국사연구』 제162집, 2013.
  • 시카타 히로시(四方 博)의 조선시대 '인구·가족' 연구에 대한 재검토. 손병규, 한국사학보 52호,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yg66fvLuPP0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4_0020_0010_0010

 

 

우리역사넷

1) 양반인구의 증가  조선 후기사회는 有役下層民의 신분의 상향이동이 심화되었고, 그에 따라 양반·중인·상민·천인으로 구성된 신분구조에도 수치의 변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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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넷

1) 양반인구의 증가 조선 후기사회는 有役下層民의 신분의 상향이동이 심화되었고, 그에 따라 양반·중인·상민·천인으로 구성된 신분구조에도 수치의 변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양반인구의 급증, 중인인구의 점진적 증가, 상민인구의 감소, 노비인구의 급감현상이 帳籍을 통한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점에서 확인된다. 여기에서는 장적상에 나타나는 양반인구가 어느 정도의 비율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수적 증가현상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 후기사회의 신분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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